건설사 조경 담당자들이 최근 서울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사업 수주를 전후해 주민들을 만나면 많이 듣는 말이다. 아파트의 조경 트렌드도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1세대 지상공원 아파트 조경은 한국의 산과 숲을 본 뜬 진경산수화를 구현하는데 중점을 둬 '큰 나무'를 '많이' 심고 아름다운 바위를 배치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 여파로 원가절감의 암흑기가 있었고, 다시 돌아온 호황기엔 실용적이고 현대적인 조경이 유행하며 2세대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건설사별로 고유한 디자인 콘셉트를 내세우기도 한다. 현대건설은 현대 미술관을 본떠 조각품 등 미술품을 전시한 공원과 같이 단지 조경을 꾸미고 있다. GS건설은 엘리시안 리조트를 아파트 단지로 옮겨온 듯한 콘셉트를 활용한다. 박도환 GS건설 건축·주택디자인팀 조경책임은 "최근엔 아파트 건물 외관과 조경 시설물, 나무와 풀과 꽃의 조화를 고려해 통합 설계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해외 설계사도 많이 활용한다. 서울 한남2구역 수주전에서 대우건설은 하버드대 조경학과 교수 크리스 리드(Chris Reed)가 이끄는 전문 조경설계 스토스(STOSS)의 설계를 동원해 사업을 수주했다. 이용욱 대우건설 외부환경디자인팀 과장은 "대우건설이 최근에 짓는 단지는 녹시율(녹지가 눈에 보이는 비율)을 최대한 높여 입주민 가족이 아파트 지상에 나왔을 때 휴식공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충해에 강하고 잘 죽지 않아 1980~1990년대 조경수로 많이 썼던 은행나무는 열매의 악취 때문에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다. 아파트와 공원 등에 많았던 향나무는 최근엔 분재 향나무 등을 제외하고는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과실수 등 다른 나무에 향나무 녹병과 같은 병충해를 옮긴다는 게 알려지면서 기피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온난화로 인한 나무 종류의 변화도 뚜렷하다. 과거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 많이 심었던 자작나무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더 이상 심기 어려워졌다. 최근엔 태백, 횡성, 인제 등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백일홍 꽃이 피는 배롱나무는 예전엔 부산이나 광주 등 남부지방 아파트에 심었으나 최근엔 서울 아파트에도 많이 식재한다. 삼성물산 등은 추위에 약해 남부 지방에만 자라던 꽃나무 목서를 최근 서울 아파트 단지에 자주 활용한다. GS건설은 제주도에서 팽나무를 공수해와 신축 단지에 많이 심는다.
나무 관리를 위해 첨단 기술도 동원된다. HDC현대산업개발 계열 HDC랩스에선 고가의 나무가 고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에 스마트센서를 부탁해 실시간으로 나무의 상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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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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