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권모씨(65)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동안 2억5000만원 정도를 사기단에 뜯겼다. 선물 투자 첫날 수익 700만원, 둘째날 손실 1200만원, 셋째날 수익 1500만원 등 투자 결과가 널뛰듯 요동쳤다. 권씨는 낮에는 홍콩, 밤에는 미국 상품을 거래하는 등 세계 각국 선물에 투자했다.
특히 사기단은 수십 명이 속해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권씨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 이 방에는 아침마다 “고급 정보 덕분에 큰 수익을 벌었다”는 식의 감사 글과 함께 ‘수익 인증 샷’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경찰 수사 결과 이 단톡방에 올라온 내용은 모두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기단은 권씨를 속이기 위해 수많은 유령 회원 계정을 만들어 조작한 사진을 유포했다.
특히 사기단은 피해자들이 ‘컴맹’인 점을 악용했다. HTS를 노트북에 까는 것조차 어려워하자 원격으로 접속해 대신 깔아주고, 권씨가 사기단의 대포통장에 현금을 입금하면 프로그램에 투자금을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친절’을 베풀었다.
권씨가 선물 거래에서 잃으면 그만큼 현금 계좌에서 빼갔고, 종종 권씨가 돈을 따 환급을 요구하면 사기단은 권씨 계좌에 돈을 입금해줬다. 권씨는 “대포통장 계좌주가 ‘블랙록’이 아니라 찜찜했지만, 실제 돈을 벌면 환급해줘 얼마 후 의심이 없어졌다”고 했다.
권씨에게 사기 친 일당은 총 4명 정도다. 이 가운데 상담 직원 여성 2명은 번갈아 가며 상담을 했고, 권씨가 돈을 잃자 “결국 버티면 따지 않겠느냐”며 선심 쓰듯 수백만원을 입금해주기도 했다. 모두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끼였다.
경찰 측은 ‘블랙록 일당’과 비슷한 수법으로 활동하는 사기단이 약 2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선물 투자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접근하면 일단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며 “유사 사례를 당한 피해자가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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