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한파로 끊겼던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입주권 거래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입주 날짜가 어느 정도 확정된 서울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입주권은 부동산 시장에서 유망 투자처로 꼽히지만, 지난해에는 시장 한파에 고금리까지 겹쳐 외면받았다. 올 들어 상황이 달라지는 모습이다. 투기과열지구 해제로 입주권 거래가 자유로워졌고, 프리미엄(웃돈) 하락에 따른 급매물이 거래되면서 투자 심리가 회복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옵션 무상 제공, 선호하는 동·층 우선 배정 등 여러 면에서 입주권의 장점이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입주권은 말 그대로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으로 지어지는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입주권을 사면 조합원 자격이 그대로 승계된다. 분양권은 일반분양 청약 당첨자가 획득한 입주 권리다. 둘 다 곧 지어질 미래의 아파트에 입주할 권리를 얻는다는 점은 같지만, 입주권은 이른바 조망과 위치가 좋은 ‘로열동·층’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분양에 앞서 조합원이 먼저 동 호수 신청 및 추첨을 하기 때문이다.
투기과열지구 규제가 대폭 해제된 것도 입주권 거래 활성화의 요인으로 꼽힌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최근 (용산 및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에서도 투기과열지구 해제가 이뤄지면서 입주권 거래가 자유로워진 것이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개발 지역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금지된다. 입주 후 등기가 완료된 뒤에 다시 팔 수 있다. 투기과열지구 규제가 풀리면 이 같은 거래 규제가 전면 해제된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입주권 프리미엄이 떨어진 것도 거래가 늘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매매가격이 인근 구축 아파트보다 저렴해지거나, 해당 단지 일반분양가(분양을 이미 실시했을 경우)와 비슷한 수준까지 맞춰지고 있어서다.
이달 말 입주 예정인 서울 동작구 ‘흑석리버파크자이’ 입주권의 경우 주변 구축보다 싸게 팔렸다. 중개업계에 따르면 흑석리버파크자이 전용면적 59㎡ 입주권은 최근 11억원에 거래됐다. 맞은편 5년 차 단지인 롯데캐슬에듀포레 전용 59㎡가 지난달 11억4000만원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인근 구축보다 신축 입주권이 더 낮은 가격에 팔린 셈이다. 다른 입주권이 호가 12억~14억원에 나와 있어 ‘급매’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만큼 입주권 프리미엄 거품이 많이 빠졌다는 방증이다. 분양권보다도 더 싼 경우도 있다. 이달 입주를 앞둔 경기 ‘부천 일루미스테이트’ 전용 59㎡ 입주권은 지난달 4억7800만원에 팔렸다. 같은 면적의 분양권이 4억7923만원이었는데 이에 비해 123만원 더 낮은 금액이다.
올해 서울에서도 입주를 앞둔 단지가 적지 않아 이들 단지의 급매를 노려볼 만하다. 올 8월에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 단지 전용 84㎡의 입주권 매물은 30억원 선이다. 지난해 3월에는 같은 면적이 38억70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당장 올해 입주하지 않고 좀 더 기다리겠다는 수요자들은 서울 재개발지역 입주권을 노려볼 만하다. 김 소장은 “용산구 한남3구역,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 이문 휘경 뉴타운 등이 유망 투자처로 꼽힌다”고 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신축 선호와 프리미엄 하락으로 인해 작년 말부터 입주권 거래가 늘고 있다”며 “입주가 집중되는 시기에는 기존 집을 처분하거나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조합원 매물 처분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