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심각해지는 역전세난에 서울 강남권 집주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셋값 하락 거래가 이어지면서 대출을 받아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는 집주인들까지 나오고 있다. 참다못한 집주인들이 싼값에 아파트를 내놓는 경우가 늘었는데, 이른바 ‘급급매’를 노리는 매수심리와 맞물리며 매매시장에서도 하락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2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4㎡는 지난 7일 10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작년 6월 같은 크기의 전세가가 13억6500만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3억1500만원 하락했다. 일원동 래미안개포루체하임 역시 전용 101㎡가 지난달 11억원에 전세 거래되며 지난해 11월 직전가와 비교해 4억원 하락했다.
사정은 강남권 내 다른 아파트 단지도 비슷하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자이 전용 59㎡는 지난 4일 9억8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작년 1월 같은 크기 전셋값이 16억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로 떨어졌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당분간 강남권 역전세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 등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를 앞둔 데다가 2020년 준공된 개포래미안포레스트, 2021년 준공된 디에이치자이개포 등에서도 전세 계약 2년이 끝난 가구가 쏟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역전세난 여파로 강남권 내 아파트 매물은 쌓이고 거래가격은 하락하는 추세다. 강남구의 아파트 매물은 최근 4867건을 기록했다. 한 달 전(3936건)과 비교해 23.6% 급증했다. 가격 하락폭도 커지고 있다.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 49㎡는 지난달 12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직전가(17억9000만원) 대비 5억원 하락했다. 개포루체하임 역시 지난달 전용 59㎡가 16억2000만원에 팔리며 2021년 직전 거래와 비교해 6억800만원 내렸다.
현장에서도 전셋값 하락이 심해지자 급매를 내놓는 집주인이 많아졌다는 반응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대출이자 부담까지 커지자 차라리 집을 내놓는 것이다. 개포동의 한 공인 대표는 “갭투자를 통해 집을 산 사람들이 역전세난에 차라리 집을 내놓고 있다”며 “시세보다 싸게 나온 매물의 대부분이 전세를 낀 물건”이라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당분간 역전세난으로 인해 매매 시장이 급매 중심으로 바닥을 다질 것으로 전망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역전세난이 지속되는 한 바닥을 다지며 매물 소화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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