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전문직단체, 플랫폼과 싸울 때 아니다

입력 2023-02-26 17:42   수정 2023-02-27 00:26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3일 소속 변호사의 법률 플랫폼 ‘로톡’ 이용을 막은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변호사회에 과징금 10억원씩을 부과하고 위법행위를 중지·금지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이들 단체가 변호사들에게 로톡 탈퇴를 종용한 것이 변호사의 사업(광고)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변호사 간 자유로운 경쟁을 막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변협은 강하게 반발했다.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사법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2014년 2월 서비스를 시작한 로톡은 의뢰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변호사를 플랫폼에서 찾아 사건을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벤고시(변호사)닷컴’을 벤치마킹했다. 다양하고 저렴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법률시장의 문턱을 낮췄다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방문자가 2300만 명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로톡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서비스 시작 1년여 만인 2015년부터 각종 변호사단체와 법적 분쟁을 겪었다. 변협이 2021년 5월 변호사의 법률 플랫폼 가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새 규정을 시행하기로 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법무부는 2021년 8월 로톡 서비스가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5월 로앤컴퍼니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변협의 광고 규정 중 일부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협은 같은 해 10월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에게 최대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 이후 변호사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로톡의 날개는 꺾였다.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직원 90여 명 중 절반 감원을 목표로 희망퇴직 접수에 나섰다. 지난해 6월 입주한 서울 강남역 신사옥도 내놓는다. 남은 직원들의 연봉은 동결하고, 경영진은 임금을 삭감한다. 공정위의 우호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단체와의 법적 분쟁이 이른 시일 안에 끝나지 않는 한 미래는 어둡다.

로톡의 위기는 결코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다른 플랫폼 스타트업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대면 의료 플랫폼 ‘닥터나우’는 대한약사협회, 성형정보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 프리랜서와 소규모 사업자의 소득 신고와 세금 환급을 돕는 ‘삼쩜삼’은 한국세무사회, 중개 플랫폼 ‘직방’은 공인중개사협회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이 가운데 몇 개는 소비자들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택시업계 반발로 좌초한 ‘타다 서비스’의 비운을 맞을지 모른다.

플랫폼과 전문직 양쪽의 주장은 팽팽하다. 플랫폼은 빅데이터 등을 통해 소비자들이 값싸게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직단체들은 전문자격인의 통제가 없으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다고 맞선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정보 비대칭성이 큰 분야에 자격증제도를 도입한 것부터가 최소한의 서비스 질을 확보해 소비자 후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정부가 개입해 서비스의 공급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순간부터 이 자격증은 기득권이 되는 게 현실이다. 전문직단체와 플랫폼 모두 소비자의 편익과 보호를 앞세우지만 싸움이 길어지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소비자다. 정부와 국회가 이익단체와 혁신 플랫폼 간 갈등을 방관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모호한 규정을 정비하고 필요하면 입법도 해야 한다.

전문직단체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챗GPT라는, 플랫폼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막강한 도전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선 챗GPT가 경영대학원, 로스쿨, 의사면허 모의시험에서 가뿐하게 합격점을 넘었다. 많은 미래학자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가장 위협받는 게 전문직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플랫폼의 도전에 맞서 쌓는 ‘직역 수호’의 제방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고 있다. 변화에 느리다고 (우리가) 흔히 비웃는 일본에서도 지난 14일 벤고시닷컴은 챗GPT 기술을 활용한 무료 온라인 법률상담을 금년 상반기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맞서야 할 상대는 더 이상 플랫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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