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미혼모가 분유값을 벌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홀로 남겨진 생후 8개월 영아가 호흡 곤란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엄마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사회적 취약계층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김천지원 제1형사부(부장 이윤호)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미혼모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보호관찰 3년과 아동학대 재범예방 강의 수강 및 성매매 방지 강의 수강을 각각 40시간 명령했다.
A씨는 임신 과정에서 낙태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가족과는 사실상 단절된 상태였다. A씨는 2021년 10월 아들을 출산한 뒤 줄곧 홀로 돌봐왔다. 미혼모가 된 A씨는 기초생계급여와 한부모 아동 양육비 등 매달 137만 원 정도로 생활했으나 월세 27만 원과 분유, 기저귀 등 양육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독촉고지서를 받았고 각종 공과금도 제때 납부하지 못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A씨는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나섰다. 아들이 숨진 지난해 5월 21일 오후 1시쯤 성매매를 하기에 앞서 '아들을 돌봐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지인 B씨에게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B씨는 이 시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고 같은 날 오후 3시21분쯤 A씨가 귀가했을 때 아이는 숨져 있었다. A씨가 젖병을 고정하기 위해 두었던 롱 쿠션이 아이 얼굴을 덮었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중한 결과(아들의 사망)의 발생에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피고인에 대해 실제로 이루어진 기초생계급여 등 일부 재정적인 지원만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양육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 내지 자활의 수단이 충분하게 마련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해 애정을 가지고 피해자를 보호·양육해 왔다"며 "단지 범행의 결과를 놓고서 전적으로 피고인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