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간판 여자 골퍼 고진영(28·사진)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고진영은 26일 태국 촌부리 시암CC 파타야 올드코스(파72·6576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혼다LPGA타일랜드(총상금 17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8언더파 64타를 쳤다.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로, 공동 6위로 경기를 마쳤다. 지난해 7월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7개월 만에 기록한 ‘톱10’이다.
고진영은 지난해 3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손목 부상으로 여름부터 긴 부진에 빠졌다. 우승은커녕 커트 탈락의 쓴맛까지 봐야 했다. 고진영은 두 달간의 휴식을 보내고 작년 10월 BMW레이디스 챔피언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하루에 8오버파를 치는 등 실망스러운 경기 끝에 기권하기도 했다.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어진 11월 펠리컨 챔피어십과 CME그룹투어 챔피언십에 연속 출전했지만 커트 탈락과 공동 33위를 기록했다. 손목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회에 출전하면서 스윙이 무너진 탓이다.
시즌은 참담하게 끝났다. 통산 152주간 지켜낸 세계랭킹 1위는 이제 5위까지 떨어졌다. 고진영은 “부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부모님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경기에 집중하자는 다짐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고진영의 새로운 시즌 첫 번째 출전이었다. 그는 대회 출전을 앞두고 LPGA투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조금도 쉬지 않고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며 “아직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밝혔다. 이어 “상반기에는 우승보다 스윙 패턴을 대회에서 구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우승경쟁에 가담하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는 고진영에게 의미가 크다. 첫날 4언더파를 기록한 데 이어 2·3라운드에서 2타씩 줄인 고진영은 8언더파로 우승자 릴리아 부(26·미국)와 나란히 데일리베스트를 기록했다.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7개를 쓸어담는 무결점 플레이를 펼쳤다. 2021년 12월 고진영에게 상금왕을 안긴 CME그룹투어 챔피어십 최종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를 친 이후 최고 성적이다. 고진영이 전 라운드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7월 메이저대회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 이후 7개월 만이다.
전성기 시절 기량도 회복한 모습이었다. 이날 고진영은 페어웨이를 단 한 차례만 놓쳤고, 평균 비거리는 246야드를 기록했다. 경기 내내 퍼터는 28회만 잡았다.
그의 최대 무기인 ‘송곳 아이언’도 살아났다.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을 싹쓸이한 2021년 고진영의 그린 적중률은 78.77%. 지난해엔 71.52%에 그치며 샷감이 다소 무뎌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날 고진영의 샷은 달랐다. 18홀 가운데 단 3개 홀에서만 그린을 놓쳐 그린적중률 83.33%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를 마친 뒤 고진영은 “바람이 심했지만 전반 나인홀에서 버디 서너 개를 잡으면 ‘톱10’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해 더 집중했다. 샷, 퍼팅, 정신력 모두 지난해보다 좋아졌다”고 만족스러움을 보였다. 그는 “베트남에서 열심히 훈련했고, 명상도 많이 했다”며 “명상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진영은 다음달 2일 싱가포르 센토사GC 탄종코스에서 열리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에 나선다. 그는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하는 만큼 더 좋은 기량을 펼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투어 혼다LPGA타일랜드 대회는 부가 8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2언더파 266타로 ‘루키’ 나타크리타 웡타위랍(21·태국)을 제치고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지난주 유럽여자골프(LET) 아람코 사우디 레이디스 인터내셔널에서 마지막 홀 실수로 리디아 고(25)에게 당한 역전패를 1주일 만에 만회했다.
KB금융그룹이 후원하는 웡타위랍은 이날 1타를 줄이는 데 그쳐 생애 첫 번째 LPGA투어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김효주(28)는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로 공동 7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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