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27일 16:1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물가 상승으로 올해 국민연금이 지급해야할 연금액이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기금 운용을 통한 인플레이션 헤지(위험분산) 전략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상황을 반영해 벤치마크를 수정하고 물가연동국채나 대체투자의 투자 비중을 늘리는 등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5대 자산군(국내주식·국내채권·해외주식·해외채권·대체투자) 가운데 대체투자 자산군만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벤치마크에 설정하고 있다. 국내외 주식이나 채권 자산군은 인플레이션 여부와 관계없이 시장을 따라가도록 설계돼 있다.
물가 급등으로 연금이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늘어나고 있지만 운용을 통한 개선은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국민연금 지급액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지난해(2.5%) 대비 2.6%포인트 오른 5.1%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올해 지급해야 할 연금액은 지난해보다 약 1조6800억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인플레이션 위기를 인지하고 있지만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해외 연기금은 물가연동국채를 벤치마크에 편입해 운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은 미국 물가연동국채(TIPS·팁스)에 자산의 5%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고채 투자 규모의 약 0.67%, 국내 채권 투자 금액의 0.28%인 8500억원을 국내 물가연동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내채권 부문은 자체적으로 설계한 벤치마크(Customized Index)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벤치마크는 국민연금이 국내 채권 비중에 따라 투자하도록 한다. 국내 시장에서 전체 국고채 중 물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연금도 낮은 금액만 투자하게 되는 셈이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에 해당하는 대체투자 비중을 늘려야 하지만 주식과 채권의 동반 부진에 따라 대체투자 비중이 크게 높아져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16.1%로 올해 말까지 맞춰야 하는 목표 비중(13.8%)을 2.3%포인트 웃돌고 있다. 목표치를 맞추려면 대체투자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기존 벤치마크에 따른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도 하락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주식이 상승하면 채권이 하락하고, 채권이 상승하면 주식이 상승하는 점에 착안해 시장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벤치마크를 설계했다. 하지만 지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주식과 채권이 동반 하락하면서 수익률이 악화했다.
국민연금은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인프라 성과평가 벤치마크 변경을 제외하고 특별한 논의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당시 연금은 인프라 성과평가 벤치마크가 인프라 자산 특성과 투자 목적 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해 해외 인프라 성과평가 벤치마크 대상 국가를 기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요 7개국(G7)으로 변경하고 국내외 CPI 산정방식을 당해연도에서 5년 평균으로 조정했다.
또 국민연금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성보위)는 지난해 기금운용본부에 ‘수익 원천 다변화를 위한 자산 배분 유연성 강화 체계 방안’을 마련하도록 제언했으나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해외 연기금에 비해 국민연금의 대응이 느린 편”이라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안건을 의제화해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류병화/차준호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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