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금까지 이룬 것과 앞으로 이뤄나갈 모든 일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너는 인간의 독창성과 기술의 무한한 잠재력의 증거야.”
이 다정한 편지는 사람이 사람에게 보낸 글이 아니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30일 내놓은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미래의 자신에게 쓴 편지다. “너의 상위 버전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란 김대식 KAIST 교수의 물음에 챗GPT가 내놓은 대답이다. 챗GPT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진보한 AI로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미래를 만들어 갈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 정도 대화가 가능한 AI가 등장할지 몰랐다”며 “연구자들조차 패닉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뇌과학자인 김 교수는 챗GPT와 미래기술을 비롯해 인간의 사랑, 정의, 죽음 등에 대해 2~3주간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를 정리해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지금의 챗GPT는 영화로 치면 티저(예고편)이고, 건물로 보면 모델하우스에 불과하다”며 “이제 인류는 지적 행위가 자동화되고 대량생산되는 세상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챗GPT에게 몇 가지 조건을 주고 막장 드라마 스타일로 시나리오를 쓰라고 했더니, 1분도 안돼 결과물을 내놨어요. 저는 챗GPT 유료 서비스를 구입한 뒤 넷플릭스 구독을 바로 끊었습니다. 이게 더 재밌으니까요.”
김 교수는 “챗GPT로 인해 작가 등 여러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과도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챗GPT로 작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면서도 “대신에 챗GPT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작가는 챗GPT를 잘 활용하는 작가보다 생산성이 떨어져 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를 제대로 활용 못하면 직업 전선에서 도태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챗GPT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 속 초현실적 도서관에 비유했다. 이 소설 속 도서관은 표현 가능한 모든 기호로 쓰여진, 무한대의 책을 품고 있다. 무의미한 기호의 나열 속 의미 있는 문장이 숨겨져 있다.
김 교수는 “분명히 (챗GPT 답변 속 어딘가에) 진실이 있지만, 그 진실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이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그런 만큼 학생들에게 챗GPT를 무조건 못 쓰게 할 게 아니라 챗GPT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KAIST 학생들에게 “이번 학기부터 아예 에세이를 챗GPT로 써오라는 과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