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더 오를 거야"…'기대심리'가 불러오는 악순환

입력 2023-02-27 18:11   수정 2023-02-28 00:07

정점을 찍은 줄 알았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5.2%로 전달(5%)보다 높아졌다. 공공요금 줄인상이 기다리고 있고, 조미료 생수 등 식품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렇듯 물가 상승세는 한 번 시작되면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중요한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자기실현적 예언이 돼 실제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채권시장 지표로 측정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물가 상승률에 대한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주관적인 전망을 말한다.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의 물가 상승률이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라고도 한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설문조사를 통해 측정한다. 한국은행은 매월 2500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향후 1년간 소비자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을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파악한다. 미국에서는 뉴욕연방은행과 미시간대 등이 역시 설문조사를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측정한다.

금융시장 지표를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BEI(Break-Even Inflation)다. BEI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에서 물가연동국채 금리를 빼 산출한다. 물가연동국채는 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원리금도 높아지는 채권이다. 물가 상승을 예상하는 투자자가 많아져 물가연동국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그만큼 금리가 하락해 BEI가 커지게 된다.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
기대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것은 기대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느 근로자가 큰 폭의 물가 상승을 예상한다면 그 이상의 임금 인상을 회사에 요구할 것이다. 그 요구가 반영돼 임금이 상승하면 회사의 생산 비용이 커지고, 회사가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작년 7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물가-임금 관계 점검’ 보고서에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4분기 후 임금 상승률이 0.3~0.4%포인트 오르고, 임금 상승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4~6분기 후 서비스 물가 상승률이 0.2%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물가가 안정돼 있을 때보다는 큰 폭으로 오르는 시기에 더 커진다. 한은이 2005년 1월~2021년 12월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기대 인플레이션과 실제 물가의 상관계수는 물가 상승기에 0.51, 물가 둔화기에 0.13이었다.

한은은 또 임금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2021년 이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공급망 제약 등 비용 증가 요인이 많아지면서 기업이 인건비 부담을 흡수하지 못하고 가격에 전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성의 인플레 기대가 더 높은 이유
197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높은 인플레이션은 미 중앙은행(Fed)이 기대 인플레이션 관리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Fed는 물가 상승률이 10%를 넘나드는 와중에도 경기 침체를 우려해 금리 인상을 주저했다. 그 결과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고착화했다. Fed가 기대 인플레이션 관리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부터다. 1979년 Fed 의장이 된 폴 볼커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올렸다.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하면 기대 인플레이션에는 주관적인 물가 상승률과 쇼핑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은 것도 여성이 장보기 등을 통해 물가를 체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생활 물가부터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Fed의 정책과 의사소통이다. 이달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4.0%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Fed가 물가 안정에 대한 의지를 경제주체들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물가는 더 불안해질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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