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혼란이 완화됐는데도 유럽과 미국을 잇는 항로의 해상 운임은 여전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운업체와 장기계약을 맺는 관행 때문에 최근 운임 하락세가 반영되지 않아서다. 여전히 큰 물류비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뜻밖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해운 예약 플랫폼 프레이토스를 인용해 유럽과 미국 항로의 해상 운임이 최근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575달러로 1년 전(442달러)보다 30%가량 상승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인 2019년 평균의 약 2배다. 반면 공급망 혼란이 누그러지면서 다른 항로의 해상 운임은 대부분 하락했다. 중국과 미국 서안을 잇는 해상 운임(단기 기준)은 지난 23일 기준 1FEU당 1164달러로 내려앉으며 1년 새 90%가량 폭락했다. 이 항로의 해상 운임은 공급망 혼란이 극심했던 2021년 9월 1FEU당 2만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작년 상반기 1만5000달러 선으로 진정됐고 이후 하락세를 이어왔다. 미·중 무역 축소 여파도 반영됐다.
미국과 유럽 사이 해상 운임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장기 계약 관행 때문이다. 실제 운송이 이뤄지기 1~2년 전에 해운업체와 유통업체가 장기 계약을 맺는다.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해 컨테이너 품귀 현상이 일어나 운임이 뛰었던 2021~2022년 가격이 장기 계약 시 반영되며 여파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운 운송계약의 70%가량이 장기 계약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둔화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높은 해상 운임을 꼽기도 한다. 1월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6%로 추정치(5.4%)를 웃돌았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기 대비 5.3%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크리스 로저스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연구원은 “소매업체들은 가격을 자주 바꾸는 걸 꺼린다”며 “해상 운임이 떨어져도 실제 제품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짧아도 1년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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