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학 개혁, 내일이면 늦다

입력 2023-02-28 17:53   수정 2023-03-01 00:25

가로, 세로 3.0㎝. 국내 사립대 총장 직인 크기다. 학장은 2.7㎝, 총장보다 작아야 한다. 서체도 정해져 있다. 한글 전서체 가로쓰기다. 교육부 규정이 그렇다.

“학교 밖은 30층 건물이 쑥쑥 올라가는데, 바로 앞 학교 안은 10층도 못 올린다. 개발 역차별이다.”

한 사립대 총장이 전한 대학 현실이다. 그에게 대학은 별별 규제에 막혀 숨이 끊긴 ‘좀비’나 다름없다. 자율도 없고, 돈도 없으며, 미래도 없다. 말 그대로 ‘3무(無)’다.
직인 크기도 스스로 결정 못해
자율 없는 대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립학교법이 규정한 의무조항만 126개다. 입학 정원, 학생 선발, 학과 신증설 등 학사관리도 교육 당국의 감독을 거친다. 예산과 규제를 틀어쥔 정부로부터 지원금과 장학금을 받으려면 저항은 금기다. 이런 정부 사업이 1000개쯤 된다는 게 대학 총장들의 말이다. 흥미로운 건 대학의 적응력이다. 지난 10년간 유치원 8000개가 문을 닫을 동안 대학은 18개가 폐교했다. 구조조정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한 지역 대학교수는 “대학 자산을 팔고 청산할 수도 없게 돼 있으니 퇴로도 막혀 있는 셈”이라며 “이젠 규제와의 공생을 터득한 것 같다”고 했다.

국립대라고 형편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세계 10대 대학을 지향하는 서울대만 해도 재정자립이 여의찮다. 법인화 10년인 지난해 세입 9411억원 중 정부출연금이 5380억원(57.2%)을 차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법인화 취지가 뒷걸음질 쳤음을 드러낸 것이다. 자율과 재정자립은 ‘잘 가르치는 실력’으로 연결된다. 한 서울대 교수는 “해외 주요 대학들과 비교하면 교수 연봉이 딱 3분의 1 수준이어서 오겠다는 사람보다 떠나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런데도 감사에선 매년 인건비 증가가 문제로 지목된다.
'줄탁동시'…기득권 변화 절실
학생 선발도 규제투성이다. 또 다른 교수는 “뽑고 싶은 학생이 탈락해 해외 유명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갈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에 따르면 2021년 서울대의 아시아 대학 평가 순위는 14위다. 2009년 평가 시작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한때 4위(2014년)까지 올랐던 순위가 시나브로 뒷걸음질 치더니, 싱가포르 홍콩 등 중국계와 일본 등에 모두 밀렸다.

규제와 개혁. 그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 한꺼번에 맞닥뜨린 게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10년 내 대학 절반이 문을 닫을 것이란 비관이 나온다. 지방 대학의 처지는 참담한 수준이다. 2023학년도 미달로 인한 전체 추가모집 인원 1만7439명 중 지방대가 1만5579명(89.3%)을 차지했다는 게 현실을 함축한다. 14년간 묶어놨던 등록금 규제를 풀어도 해결하기 힘든 ‘시장’의 실종이다.

현실이 지목하는 해법은 두 가지다. 자율과 시장이다. 새 정부는 틀어쥐고 있던 예산권의 50%를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와중이다. 그간 보기 힘들었던 변화다. 이젠 개혁에 저항한 대학 안팎의 기득권 세력이 응답할 차례다. 24시간 뉴스 방송 CNN을 만든 미디어 황제 테드 터너는 이렇게 말했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비켜서라.” 결단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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