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28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1차 세부 사항에서 기업들이 위협적 변수로 꼽은 내용들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을 담았다고 하지만 해당 기업들은 보조금을 받으면 치러야 하는 대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여러 독소조항이 들어갔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법을 시행하면서 반도체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5년간 527억달러(약 70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책정했다. 반도체 생산 보조금이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이 110억달러 등이다. 이날부터 생산 보조금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날 발표한 A4용지 75장 분량의 반도체법 기금 지원공고에는 생산 보조금을 신청하는 절차가 담겨 있다. 보조금 지급 기준과 여러 지원책도 포함돼 있다.
기업들이 압박으로 느낄 만한 대목도 들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과이익 공유’가 대표적 예로 꼽힌다. 미국은 보조금을 1억5000만달러 이상 받은 반도체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거두면 그 이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하도록 했다. 공유 한도는 지원받은 보조금의 최대 75%로 정했다. 초과이익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쓸 방침이다. 보조금 재원이 미국 납세자의 세금인 만큼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초과이익 기준과 이익 공유 방식을 놓고 미국 정부와 기업 간에 이견이 생길 소지가 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무부는 초과이익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3월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상무부는 보조금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상세한 회계장부를 요구했다. 사업의 예상 현금 흐름과 수익률 등 수익성 지표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주요 생산 제품과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및 원료명도 내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선 영업기밀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상무부가 2021년 공급망 정상화를 명분으로 반도체기업의 생산 및 고객사 현황 등을 제출하라고 하자 기업들은 “영업기밀까지 공개할 순 없다”고 반발했다.
또 “미 국방부가 실험, 생산 및 국가 안보 프로그램으로 통합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접근을 허용할 의사가 있는 기업을 원한다”고 명시했다. 군사적 용도에 한해 첨단 반도체 시설을 공개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무부는 기업들에 이런 기준을 제시한 뒤 미국의 안보 이익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30장 이내로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상무부는 10년간 중국에서 추가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는 가드레일 조항에 대해선 이번에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 안보를 저해하는 특정 국가에서 제조 능력을 확장할 수 없으며 적성 국가들과 첨단 기술 제휴를 맺지 못한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넣었다. 중국과 러시아 등에 도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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