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02일 11: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 노후 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내놨다. 운용수익률은 ?8.2%로 80조원 가까운 손실을 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연간 기금운용 수익률이 ?8.22%로 잠정 집계됐다고 2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말까지만 해도 연초 이후 운용수익률이 ?4.93%였으나 연말 국내외 주식시장 부진에 한 달 새 3.2%포인트 넘게 낮아졌다. 기금 적립금은 2021년 말 948조원까지 불어났으나 지난해 말 890조5000억원으로 다시 900조원 아래로 줄어들었다.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낸 것은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래 세 번째다. 국민연금은 2008년과 2018년 각각 ?0.18%, -0.92%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손실 규모는 각각 4270억원, 5조9000억원이었다.
지난해 이례적으로 주식과 채권시장이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운용손실을 키웠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코로나19 사태로 풀었던 유동성을 다시 조이면서 고공 행진했던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고강도 긴축에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치며 채권가격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채권은 반대로 움직이며 서로 보완하는 경향을 갖지만 지난해 이 경향성이 무너졌다.
국내외 주식과 채권시장 부진에 따라 국민연금의 전통 자산군 수익률도 크게 떨어졌다. 자산별 군별로 보면 금액 가중수익률 기준 국내 주식 -22.8%, 해외주식 ?12.3%, 국내 채권 -5.6%, 해외채권 ?4.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해외주식과 해외채권은 선방한 것으로 보이지만 달러 기준 수익률로 보면 해외주식 -18.2%, 해외채권 -11.2%으로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낮아진 전통 자산 수익률을 대체투자가 보완했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수익률은 8.94%로 유일하게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다만 대체투자 수익률은 벤치마크(BM) 수익률을 하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 지표(CPI)와 연동된 국민연금 대체투자 벤치마크가 지난해 인플레이션 여파로 큰 폭으로 뛰며 대체투자 자산군 수익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절대 수익률이 낮은 전통 자산 수익률은 모두 벤치마크를 웃돌았다. 벤치마크 대비 초과 성과는 해외채권 0.88%포인트, 국내 주식 0.47%포인트, 해외주식 0.15%포인트, 국내 채권 0.04%포인트의 순으로 집계됐다. 벤치마크는 자산을 운용할 때 운용성과는 측정하는 기준 수익률이다.
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낸 국민연금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한 자산 배분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산군별로 목표 비중을 부여하고 이를 맞추도록 하는 현행 방식 대신, 자산군 간 칸막이를 낮춰 자산별로 각각 위험 값을 설정하는 TPM(total portfolio management)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주식이 상승하면 채권이 하락하고, 채권이 상승하면 주식이 상승하는 점에 착안해 시장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자산 배분을 설계했으나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주식과 채권의 ‘역(逆)의 상관관계’가 떨어지고 있다. 주식·채권이 동시에 대폭 하락한 것은 해외시장에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국내에선 2001년 이후 처음이라는 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설명이다.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에 해당하는 대체투자 비중을 늘려야 하지만 주식과 채권의 동반 부진에 따라 대체투자 비중이 크게 높아져 자산 배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16.4%로 올해 말까지 맞춰야 하는 목표 비중(13.8%)을 2.6%포인트 웃돌고 있다. 목표치를 맞추려면 오히려 대체투자 자산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지난해 수익률을 방어했던 해외 연기금은 높은 대체투자 비중을 갖고 있다. 지난해 ?5% 수익률을 기록한 캐나다 연금 투자위원회(CPPIB)는 대체투자 비중이 59%에 달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에 기대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었으나 최근 들어 이들의 상관관계가 떨어지고 있다”며 “전통 자산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새로운 자산 배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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