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술관의 기준은 무엇일까. 과거엔 하나의 답이 있었다. 국적을 초월한 ‘세기의 명작’을 얼마나 많이 소장하고 있는가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그 미술관이 속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대중의 예술적 만족감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세계적 미술관, 박물관 틈에서 아시아 기관 중 유일하게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인정받는 곳이 딱 한 곳 있다. ‘아시아의 MoMA(뉴욕현대미술관)’로 불리는 홍콩의 M+뮤지엄이다.
2021년 홍콩 서주룽문화지구에 문을 연 M+뮤지엄은 중국 한국 일본의 현대미술 걸작부터 건축·디자인, 1990년대 홍콩 영화 등 아시아 시각문화를 망라하는 자타공인 ‘아시아 최고 미술관’이다. 그 중심에 10년째 부관장 겸 수석큐레이터로 뛰고 있는 한국인 정도련(50·사진)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를 최근 만나 홍콩과 한국 미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 부관장은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다. 2003년부터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에서 일한 그는 2009년 한국인 최초로 MoMA 큐레이터에 임명되며 화제를 모았다. 2013년 M+ 수석큐레이터이자 부관장으로 자리를 옮겨 8년간 개관 준비를 했다. 이 기간 온라인 전시 등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21년 마침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홍콩 문화예술의 부활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2년 전 공식 개관했지만 코로나19 방역 정책 때문에 해외 관람객에게 보여줄 수 없었어요. 다행히도 최근 방역 정책이 완화되면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달 21~25일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은 M+를 세계 미술계에 제대로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구사마 야요이(94)의 대규모 회고전엔 벌써부터 해외 관객이 구름같이 몰리고 있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럴 만도 했다. M+가 2008년 미술관 소장품 구입 비용으로 홍콩 정부에서 받은 예산은 17억홍콩달러(약 2830억원). 여기에 2012년 스위스 컬렉터 울리 지그가 13억홍콩달러(약 2160억원) 규모의 소장품 1463점을 쾌척하는 등 기증도 잇따랐다. 현재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수는 총 8200여 점, 건축 관련 문서나 사진 등 아카이브 자료는 5만 점을 훌쩍 넘긴다. ‘뉴욕의 MoMA, 파리 퐁피두센터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목표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중국 정부의 간섭이나 검열은 없는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전시에 대한 검열은 일절 없어요. 중국 현대미술 대표작을 모아놓은 전시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게 ‘반체제 작가’로 유명한 아이웨이웨이의 거대한 설치 작품입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서 한국의 잠재력은 엄청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기관의 기획력은 물론 신생 화랑의 전시 수준, 큐레이터들의 실력과 트렌드를 읽는 능력 모두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했습니다. 서도호, 양혜규, 이불 등 세계적인 작가들은 물론 이미래, 최하늘 등 젊은 작가들도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죠. 방탄소년단(BTS) 등 대중문화의 성공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많이 늘었고요. M+도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 작품을 계속 소장품으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정 부관장은 한국 미술의 발전 속도를 더 높이려면 실력 있는 큐레이터들이 해외로 적극 진출해 한국 미술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최근 한국 큐레이터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미국 LA현대미술관의 클라라 김, 영국 테이트의 크리스틴 김, 캘리포니아 버클리뮤지엄 수석큐레이터인 빅토리아 성, 구겐하임 큐레이터인 경 안까지….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업적이 쌓여 한 나라의 문화가 더욱 강해지는 거라고 믿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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