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입주가 수개월씩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유례없는 건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수급 차질과 화물연대 총파업이 겹치면서 당초 약속한 입주 예정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업장이 줄을 잇고 있다. 입주가 밀리면 입주 예정자들은 당장 거주할 곳을 찾느라 애를 먹는다. 건설사도 공사 단가가 오른 마당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지연 배상금까지 입주 예정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인천 연수구 송도동 ‘힐스테이트 송도 더 스카이’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최근 입주 예정자들에게 내년 2월로 예정된 입주 시기를 5월로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입주 예정자들이 납부한 계약·중도금에 대해선 입주 지연 기간 지체 배상금을 산정해 잔금에서 공제해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올해 1월로 예정된 서울 강남구 자곡동 ‘수서역 역세권 A3블록 신혼희망타운’ 입주도 오는 6월로 연기됐다. 이 단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서울 강남권에 처음 공급한 신혼희망타운으로, 59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상반기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자재 수급 문제로 올 3월로 입주 예정일이 늦춰진 데 이어 하반기엔 화물연대 총파업 여파로 공사가 멈추면서 입주가 6월까지 밀렸다. 한 입주 예정자는 “올해 초등학교에 진학한 자녀가 다른 학교에 입학했다가 입주 시기에 맞춰 또다시 전학을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들어서는 민간 임대아파트인 ‘KTX오송역 대광로제비앙’과 경남 양산시 ‘양산 천년가 더힐’도 최근 화물연대 파업 등을 이유로 입주 예정일을 각각 3개월 연기했다.
6700가구가 넘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역시 아직 시공사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입주 시기가 당초 올해 11월에서 내년 상반기로 미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 말 기준 이 아파트 공정률은 64%로 목표치(73%)를 밑돌았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일에 맞춰 기존 집 전세 계약을 맺었다가 입주가 지연될 수 있다는 소식에 계약 기간을 더 연장해야 할지 고민하는 입주 예정자가 상당수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해당 금액을 입주 시 내는 잔금에서 공제해 주는 방법도 있다. 통상 연체 이자율은 연 5~6%대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계약서에 입주 지연 배상에 관한 조항이 없는 경우 배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입주 시기가 3개월 넘게 늦춰지면 시공사를 상대로 분양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사 단가 상승, 주택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로선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작년 1월 붕괴 사고가 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가 재시공에 들어가면서 예정보다 입주가 60개월 밀리자 가구당 1억2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총 784억원 규모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경제 상황의 변동, 화물연대 파업 등으로 준공이 늦어진 경우 입주 지연 배상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파업 등에 따른 피해액 추산이 간단하지 않고, 입주 예정자들의 권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어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