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센진’이라는 단어는 재일한국인을 향한 혐오와 멸시의 단어다. 자이니치라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다. 그런데 최근 <나는 조센진(ぼくは挑?人)>이란 책이 일본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 화제다. 제목에 쓰인 조센진은 재일조선인을 향한 경멸의 단어 조센진(朝鮮人)이 아니다. ‘도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 조센진(挑?人)이다.
흥미로운 점은 책의 저자인 창행이 어릴 적 조센진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재일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일본 교토시 우토로 지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공장이 건설되면서 약 13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됐다가 정착한 곳이다. 창행의 할아버지가 우토로 출신이다.
<나는 조센진>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을 향한 왕따와 차별을 극복하고, 저글링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괴롭힘을 당해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괴로웠을 때 어떻게 삶의 희망을 찾았는지, 저글링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고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그리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는지 경쾌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현재 한국 국적의 김창행은 저글링 프로 퍼포머로서 세계를 누비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맡겨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내 이름은 ‘김창행’이 아니라 ‘오카모토 마사유키’로 돼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되면 이름이 또 하나 늘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날부터 저는 학교에서 김창행이 아니라 오카모토 마사유키로 불렸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의 왕따는 시작됐다. 신발장에서 신발이 없어지고, 의자 위에는 압정이 놓여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증조할머니는 용기를 심어주며 조선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도록 도와줬다.
중학교에 입학해 저글링을 시작하면서 창행은 진심으로 노력할 수 있는, 그래서 최고가 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고 느꼈다. 미국에서 열리는 저글링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창행은 비로소 제대로 꿈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창행의 나이가 14세였다. <나는 조센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뛰어넘는 위대한 노력의 힘을 소개한다.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재일한국인의 눈물겨운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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