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중요하다. 외모는 물론 건강과 지능, 더 나아가 미래 소득에 영향을 준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는 것은 ‘유전자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게 아닐까. 사람들도 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대놓고 말할 순 없었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우대받는 게 자연스럽다는 우생학적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종, 민족, 개인을 도태시켜야 한다며 대량 살상 또는 거세했던 게 불과 20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다.
<유전자 로또>는 대담하게도 그 불편한 질문을 꺼내 든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사람들 간의 유전적 차이, 그에 따른 건강과 능력의 차이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쓴 캐스린 페이지 하든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과학자가 단체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뛰어들고자 한다면, 사람은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유전적으로 똑같다는 주장은 특히 진보주의자들이 강하게 펼쳐왔다. 이들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말한다. 불평등은 사회 제도와 환경 탓이라고 지적한다. 2000년 6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사람의 DNA 서열을 처음 밝혀냈을 때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창조됐고, 법에 따라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탐험하면서 드러난 위대한 진리는 모든 사람이 인종과 관계없이 유전적 측면에서 99.9% 이상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작은 유전적 차이도 사람의 일생에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외모도, 지능도, 건강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견해에도 거리를 둔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 성공은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것으로, 정부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과도하게 개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저자는 유전적 차이로 인한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교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의론>을 쓴 존 롤스를 인용한다. 롤스는 ‘어떤 집안에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자기가 어떤 곳에 태어날지 모르는 사람은 출생과 선천적 능력 등 ‘자연 로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책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철학적 질문만 던지는 것은 아니다. 유전학을 연구하는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분자유전학의 최첨단 기술인 전체 유전체 연관 연구(GWAS)를 동원해 유전적 차이가 개인 간의 차이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교육 다유전자(polygenic)지수 상위 25% 집단의 대학 졸업률은 55%로, 하위 25%의 11%에 비해 현격히 높았다. 70대 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교육 다유전자지수 상위 그룹이 하위 그룹보다 자산이 평균 47만5000달러 많았다. 유전자에 따라 교육과 부의 격차가 발생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만 저자는 너무 유전자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책에 따르면 100만 명 이상의 개인을 대상으로 GWAS 검사에서 관찰한 교육 성취도의 10~15%가량이 유전적 요인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비(非)유전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부모의 재력과 사교육, 주변 환경 등도 교육 성취도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저자는 다른 요인보다 유전적 차이에만 초점을 맞춘다. 공교육을 유전적으로 불리한 학생들의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재설계해야 한다는 식이다.
논쟁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 그렇듯 분석과 해법이 완벽하지는 않다. 중요한 질문을 나름의 논리를 덧붙여 던진 것만으로 읽어볼 가치는 있다. 유전적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개인 유전자 분석이 보편화할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질문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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