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 교수는 1890년 이후 미국의 집값을 추적했다. 그 결과를 2009년 출간된 <버블 경제학>에서 설명했다.
여기서 실러 교수는 금융위기를 부른 미국의 집값 급등과 폭락을 수요와 공급 같은 경제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시장심리의 전염력'이 버블과 그 붕괴를 불렀다고 설명한다.
실러 교수가 제시하는 1890년 이후의 미국 집값 데이터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집값에 관심을 가지는 크기에 비해 실제로 관심이 지속되는 기간은 그만큼 짧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실러 교수는 1890년 이후 만들어진 여러 주택 가격 지수를 이어 붙이는 식으로 해당 데이터를 완성했다. 주택 크기 증가와 품질 향상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각각의 지표에서 표준주택 가격을 산출하고 이를 연결한 것이다.
1934년부터 1953년까지는 어떤 주택가격지수도 존재하지 않아 직접 만들어야 했다. 대학원생들은 신문의 부동산 매매광고에 실린 매도 가격을 참고해 주택가격을 추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실러 교수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대해 '오래된 신화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주택 가격 상승률이 국민 소득 증가에도 못 미쳤다는 것이다.
국민소득에서 주거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일정했다. 하지만 단순히 구매가 아니라 주택 개량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 늘면서 집값 상승이 평균 소득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기자도 2010년을 기준으로 1990년 이후 연평균 물가상승률과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이때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보다 낮았다. 급등기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아파트 매매가가 물가보다 크게 오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평균 상승률은 기대에 못 미쳤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구매자를 대상으로 향후 10년동안의 예상 주택가격 상승폭을 조사했다. 2005년은 미국 부동산 버블의 절정기였던만큼 기대 수준은 높았다.
평균 예상가격은 매년 14%상승이었다. 심지어 50% 이상의 상승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격 상승이 새로운 설명을 낳고, 이 설명이 다시 가격 상승을 부르고 있다고 실러 교수는 판단했다.
한번 이같은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시장에 투기 심리가 확산돼 사람들이 정보를 이성적으로 판단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 시점이 되면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드는 수요·공급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격이 오르면 또다른 가격 상승을 부르는 수요 증가로 연결된다. 이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가격 하락이 추가 하락을 낳는 악순환으로 전환된다.
실러 교수는 2000년 이후 집값 상승 기대가 퍼진 이유를 닷컴 버블 직전까지 있었던 주식시장 붐에서 찾는다. 누구나 투자로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투자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가 되는 것이 또 다른 삶의 목표가 됐다. 현명한 투자자는 물질적 성공에 더해 사회적 존경까지 받는다.
실러 교수는 이를 '우리 자신에 대한 사고의 변화'라고 규정했다. 14년 전 쓰여진 글이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사회를 분석한 글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이같은 사고의 전염은 호황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더해지며 강화된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미 급등한 가격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추가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도 실물경제와 관련된 낙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으로 원유가격부터 곡물가격까지 원자재가 오르며 주택 등 각종 자산 가격 상승을 정당화했다. 여기에 인터넷과 신경제 등 새로운 경제현상을 나타내는 용어가 등장했다. 경제 메커니즘 자체가 바뀐만큼 버블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로는 집값이 과대 평가된 시점에도 사람들은 그 가격을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균형 상태’로 치부하게 된다. 이어 이같은 트랜드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으로 믿게 된다.
실러 교수는 2006년 버블 붕괴 이전 2년간 가격 하락을 알려주는 조짐이 나타났지만 주목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몇년간 주택 매매를 통해 이익을 올린 이들이 이후에도 이것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포메이션 캐스케이드(information cascade·정보의 계단식 폭포)'가 더해진다. 외부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는 무시하고 다른 이들의 주장에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류가 된 사고와 동떨어지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알아서 무시하게 되고, 해당 정보는 유통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집단 전체는 통념과 다른 정보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잃게 되고, 집단 전체의 질이 점점 떨어진다.
하지만 심리를 근거로 한 자산 가격 상승은 심리 변화에 따라 다시 꼬리를 내리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두각을 나타냈다가 해당 사고가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 시장 전반의 심리도 변화하게 된다.
“낙관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격 하락 가능성에서 자신을 보호할 벙법을 찾기보다, 호황인 경제 상황을 온전히 이용할 방법을 찾는 경향이 있다.”
2009년 출간된 책이지만 지난해초까지 이어졌던 한국의 집값 급등을 설명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이야기를 통한 시장심리의 전염'은 유튜브와 재테크 인플루언서를 통한 재테크 열풍이 코로나 시기에 특히나 거셌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지난 집값 급등을 되돌아보며 유튜브와 부동산 거래 플랫폼,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이 미친 영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버블 경제학>이 최근 다시 출간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서술된 내용이 의미를 가졌을 시점은 투기적 시장 심리가 절정이었던 2~3년 전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다만 'subprime solution'이라는 원제처럼 책의 절반 정도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점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지나간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아울러 실러 교수는 책에서 "(미국이)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실제 미국 집값은 빠르게 회복해 2020년에는 2005년 수준까지 올랐다. 집값의 변동성은 실러 교수가 그렇게 경계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은게 아닌가 싶은 부분이다.
책에서 실러 교수는 집값 상승의 근거로 제시되는 주장들을 모두 반박한다. 건축비 상승은 대체될 수 있는 건축자재 등을 감안할 때 집값 상승의 본질이 될 수 없고, 입지와 땅값은 개발 호재를 선반영한 투기 수요의 유입으로 오른 것인만큼 중장기적인 집값 흐름과 다르다는 것이다.
도시 등 입지에 대한 선호도 실제 주택 가치와 비교해 과대평가됐다고 본다. 실러 교수의 말이 모두 맞다면 2010년대 이후 미국 주택 가격 상승은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집값이 올라야 건설경기가 활성화되고 경제가 좋아진다"는 논리를 반박한 부분은 흥미롭다. 그같은 논리대로라면 자동차 가격과 밥값, 통신료, 옷값 등 재화의 가치는 모두 올라야 경제가 좋아진다는 논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러 교수는 이를 '엉터리 경제학'이라고 치부하면서 건설사들도 다른 기업들처럼 집값 상승보다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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