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대표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다. 위례·대장동 개발,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이후 내분이 커지고 있고, 당 지지율도 곤두박질 치고 있다. 체포 동의안은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가결 정족수인 출석 의원 과반(149표)에 미치지 못해 부결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찬성이 많아 가결로 봐야 한다. 민주당에서만 반대·무효·기권 등 30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온 것이다.
압도적 부결을 장담하던 이 대표는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수준을 넘어 정치 생명이 칼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재명 리스크’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셈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표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이 대표에게 당을 계속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명(비이재명)계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부결로 이 대표의 신뢰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며 “당 바깥에선 사법 리스크가 이 대표를 옥죄고 당내에선 잠복해 있던 불만들 폭발로 인해 정치적인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몰랐다는 것부터 시작해 이 대표의 숱한 과거의 발언을 믿을 수 있느냐가 한 축이고, 그를 둘러싼 수사들에 대해 과연 무죄로 입증할 수 있느냐가 또 다른 의구심의 한 축”이라고 말했다. 수사 결과 한 건에서도 유죄가 나온다면 당도 덩달아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어 더 늦기 전에 손절해야 한다는 게 비명계 대다수의 속내라고 그는 말했다.
이 대표는 단기간에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거부 반응을 뚫고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고 당 대표도 거머쥐었다. 민주당 주류 교체의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닿는다.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주류 교체가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주장하면서 동교동계 색채를 지웠다. 이 대표 체제에 들어와선 자기만의 색채를 가미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과 기존 주류들을 제치고 친이명계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외곽에선 ‘개딸’, ‘양아들’ 등 든든한 팬덤을 형성했다. 불과 2년도 안 돼 당 안팎에서 친이재명 진지를 공고하게 구축하면서 구주류의 목소리는 물밑에 잠겼다. 이상민·조응천 의원 등 간간이 견제의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찻잔 속에 그쳤다.
하지만 당내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민주당은 세 번 집권한 68년의 관록을 가진 정당이다. 방탄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보는 민주당 구주류 세력은 ‘민주당=이재명’ 등식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민주당의 한 원로의 말이다. “그 엄혹한 시대를 뚫고 반석을 다져 온 민주당이 사당화(私黨化) 등 비민주적으로 돼 가는 데 대한 전통 민주당 저변 세력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숨죽이고 있었던 것은 당 분열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전통의 민주당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만있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떠돌다가 민주당에 숟가락만 들고 온 것 아닌가. 그의 리스크가 당의 리스크로 더 이상 이어지게 해선 안 된다. 적어도 그의 얼굴로 총선까지 가게 둘 수는 없다.”
설훈 의원 등 구주류 측 인사들은 체포 동의안 부결 뒤 이 대표 당직 사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체포 동의안 표결 전 “반명계 대표인 설 의원마저 이번에는 부결해야 된다고 말한 것은 부결시키되 대표가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도 “무더기 이탈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당이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의 거취 표명을 압박한 것이다.
민주당의 원로 권노갑 전 의원은 이 대표 면전에서 “이번 체포 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다음엔 떳떳하게 임하라”고 했다. 이 대표의 사법적 리스크가 커지는 데도 대표직을 유지한 채 방탄에 기댄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의 뜻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와 경쟁했던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심상치 않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공고한 진지를 구축한 친명계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비명계가 부결을 외쳤는데도 대규모 이탈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친명계들은 ‘비명계의 뒤통수 때리기’ 프레임까지 걸고 있다.
최대 변수는 검찰 수사의 향방이다.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지만 검찰은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검찰이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원 상당 약정 의혹(부정 처사 후 수뢰) 등과 관련해 보강 수사를 거쳐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경우 구속 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백현동·정자동 개발 비리 의혹, 쌍방울 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 등 수사도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의혹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민주당이 방탄 국회를 지속하고 있어 국회에 다시 체포 동의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건건이 방탄을 하기에는 민심이 받쳐 주지 않는다. 최근 여러 여론 조사에서 체포 동의안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찬성 응답도 반대보다 월등하게 높은 마당이다. 게다가 당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일과 이달 2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29%로, 1주 전 조사에 비해 5%포인트 급락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주목되는 것은 친명계로 분류되지만 계파색이 옅은 의원들의 동향이다. 재판과 수사가 지속되고 민심이 등을 돌린다면 이들이 과연 이 대표를 보호하는데 계속 동참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의원들이 유력 정치인에 기대는 것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한도 내에서다. 이 대표 리스크가 지속돼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줄 수 없을 지경으로 간다는 판단이 선다면 선택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당내 상황이 이렇게 되고 민심이 등을 돌리는데도 친명계가 ‘기승전 이재명 지키기’에 나선다면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의 ‘난닝구(실용주의파)’와 ‘백바지(개혁파)’ 충돌로 인한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와 같은 일을 다시 맞게 될 수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줄곧 주장해 온 민주주의 구호의 허구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틈만 나면 민주주의를 입에 올렸다. “이재명을 부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말라.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분쇄하겠다….” 민주주의 훼손 근거로 검찰 수사의 부당성과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를 들고 있다. 하지만 개인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는 민주주의 파괴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자신의 개인 비리 의혹 방어를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해 왔다.
민주당도 이견이 큰 법안은 충분히 숙의(熟議)하도록 한 안건조정위원회 제도 취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꼼수까지 부려가며 양곡관리법 등을 상임위에서 일방 처리했다. 의회 민주주의 기본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것이다. 말은 ‘선당후사(先黨後私)’지만 당 전체가 온통 ‘선사후당’에 나선 것이 이 대표와 민주당 위기의 본질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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