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고하면서 ‘닥터 둠’(doom·파멸)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번엔 ‘초거대 위협’(Megathreats·앞으로 모든 것을 뒤바꿀 10가지 위기)이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경BP를 통해 출간한 같은 제목의 신간을 통해서다. 5일 뉴욕 맨해튼 한국무역협회 인터뷰실에서 그를 만나 세계 경제의 미래를 비관하는 배경에 대해 들어봤다. 루비니 교수는 자신이 제기하는 위기론이 음모에 기반하지 않았다며 닥터 둠 대신 ‘닥터 리얼리스트’(realist·현실주의자)로 불러달라고 했다.
▷현시점에서 세계 경제를 위협할 요인은 어떤 것들입니까.
“현재의 위협은 몇 년 전과 차원이 다릅니다. 부채 증가, 장기 저금리·양적완화 정책의 폐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통화 붕괴, 탈세계화, 미·중 갈등, 고령화 및 연금 부담 가중, 불평등 심화, 기술의 위협, 기후 위기 등이 한꺼번에 왔죠. 코로나19 역시 마지막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아닐 수 있죠.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로봇 자동화 등 혁신으로 상당수 직업이 사라지고,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며 ‘초거대 위협’으로 작용할 겁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2008년엔 금융만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으니까요. 오일 쇼크가 닥친 1970년대보다 상황이 나쁩니다. 당시 유가 폭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쳤는데 글로벌 부채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350%나 되죠.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0년대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블랙스완’(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이 진정한 블랙스완입니다. 9·11 테러나 팬데믹 등이 대표적인 사례죠. 현재의 위협들은 예상할 수 있고, 대비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또 다른 블랙스완이 나타날 수는 있겠죠.”
▷글로벌 인플레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년여간 각국의 부적절한 금융 정책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습니다. 통화 완화와 재정 지원 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이뤄졌어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준 요인입니다. 일각에선 경기 침체 없이 물가 목표(2%)를 맞출 수 있다고 믿지만, 개인적으로 회의적입니다. 미국 역사상 물가 상승률 5% 이상, 실업률 5% 이하였을 때 금리를 인상하면 어김없이 경착륙을 맞았습니다. 원자재 가격은 지정학 위기 때문에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요. 고용 역시 강세입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연말까지도 4~5%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미국의 긴축 정책은 최종 지점이 어디일까요.
“연말 물가 상승률을 4~5%로 계산한다면,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연 6% 가까이로 올릴 겁니다. 유럽도 최종금리를 연 4% 이상으로 높일 수 있죠. 경기가 악화하면서 주식과 채권, 신용자산 가격은 폭락할 겁니다.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늘고 금융시장도 붕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겁을 먹고 긴축을 멈추면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합니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것입니다. 시장 역시 연착륙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주가가 하락하고 채권 금리가 뛰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다가올 경기 침체가 한국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연착륙 시나리오에선 한국에 큰 불황이 없을 것으로 봅니다. 기술과 지식 혁신이 많은 국가이니까요. 다른 신흥국보다 회복력도 강합니다. 문제는 경착륙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무역 감소 충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중 갈등도 거대한 위기라고 봤는데, 한국은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미국과 중국은 동맹국을 대상으로 선택을 강요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고급 반도체와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고 있는데, 이런 기술 갈등이 심화할 것입니다. 기술 분야에서 디커플링이 발생하면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영향을 받습니다. 세계는 둘로 나뉘고, 경제 구역도 나뉠 겁니다. 한국도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일 수 있어요.”
▷중국은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달러 위상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합니까.
“중국은 결국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의 동맹국은 달러 사용을 피하게 될 겁니다. 일부 신흥국은 위안화를 준비 통화로 지정할 수 있겠죠. 중국 정부가 나서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같은 전자상거래 지급 시스템을 전 세계에 보급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 통화 체계가 달러와 위안화, 두 종류로 양분될 수 있어요. 달러 지배력은 수십 년에 걸쳐 약해질 겁니다.”
▷미국의 부채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공 및 가계 부채 비율은 2차 대전 직후, 대공황 때의 정점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그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으로 대규모 경상적자를 메울 수 있었죠. 하지만 ‘공짜 술’을 많이 마실수록 건강은 나빠집니다. 달러 위상이 추락하면 이미 늘어난 부채 때문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겁니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도 작지 않은 위협입니다. 어떤 정책 변화가 필요할까요.
“인구 성장이 더디면 경제 성장이 둔화합니다. 부채 부담은 더 커지죠. 소수의 젊은 층이 내는 세금으로 노령 인구를 지원하는 기형적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자본 투자가 감소하고, 혁신도 줄어듭니다. 이민 정책을 통한 해결에도 한계가 있어요. AI 시대엔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니까요. 노동집약적 직업군이 먼저 사라지고, 지식산업군도 서서히 없어지겠죠. 각국 이민 정책은 더 엄격해질 겁니다.”
▷세계가 AI 등 기술 혁신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AI가 바꿔 놓을 미래를 예측해 주십시오.
“팬데믹 이전 한국의 자동차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생산 공정의 90%를 자동화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노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지속되긴 어려워요. 언젠가 본격적인 AI·로보틱스 도입이 이뤄질 겁니다. 그럼 경제 규모와 잠재 성장률이 높아집니다만 영구적 실업 문제가 불가피해집니다. 간병인, 경제분석가, 의사, 변호사 등도 로봇이 대체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상위 10%의 기술·교육·인적 자본을 보유한 기업은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사라질 겁니다.”
▷초거대 위협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투자자에게 조언한다면.
“일반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는 주식과 채권 비중을 6 대 4로 담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고 불황 위기가 커지면서 이 공식이 깨졌죠. 채권, 주식, 부동산 등 모든 자산이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밈 주식(유행 투자 종목)과 암호화폐,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은 잊으세요.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해야 합니다. 한 달짜리 채권이나 금이 좋다고 봅니다. 부동산은 기후 영향이 작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곳을 택해야 살아남을 겁니다.”
2005년 포천지에 “주택시장에서 경제를 붕괴시킬 투기적 물결이 오고 있다”고 기고했다. 2006년 IMF 보고서에서 “2008년 엄청난 신용 거품이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같은 해 “조만간 주택 붕괴와 오일 쇼크(유가 급락), 급격한 소비 타격, 경기 침체가 한꺼번에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며 과거 발언이 재조명받았다. 2010년 저서 <위기 경제학> 이후 13년 만에 출간한 <초거대 위협>(한경BP·사진)을 통해 또 다른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약력
△1958년 터키 이스탄불 출생
△1982년 이탈리아 보코니대 경제학과
△1988년 미국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박사
△1987~1991년 뉴욕대 조교수
△1991~1994년 예일대 부교수
△1998~1999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수석이코노미스트
△1999~2000년 미국 재무부 티머시 가이트너 차관 선임고문
△1994~2022년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현 명예교수)
△현 누리엘글로벌이코노믹스 회장
뉴욕=정소람 특파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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