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동 트럼프월드 2차 아파트 앞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여의도 대표 주유소 중 하나인 이곳은 주유소를 밀고 지하 7층~지상 29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건설하고 있다. 앞서 서교동 청기와주유소, 청담동 오천주유소 등 서울 대표 주유소도 문을 닫고 오피스텔로 변신 중이다. 쌓여가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서울 밖 상황은 더 심각하다. 주유소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폐업한 경기 파주시의 한 업주는 “토지 정화 비용 등 폐업 비용만 1억원 넘게 든다”며 “폐업하는 곳은 상황이 나은 곳”이라고 토로했다. 전체의 80%에 달하는 주유소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주유소 폐업이 이어지는 것은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2.52%로 일반 도소매업(4.06%)을 크게 밑돌았다.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은 2019년 기준 2600만원에 불과했다. 동네 식당이나 모텔보다 수입이 적다.
최근 주유소 수익성은 더 악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최근 통계자료는 없지만 내부 추산으로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0~1%대로 내려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0~1%대 평균 영업이익률은 사실상 적자를 보는 곳이 부지기수라는 의미다.
실적이 나빠진 배경으로는 고유가 영향 등이 꼽힌다. 코로나19 직후 기름값이 뜀박질해 1원이라도 싼 주유소로 손님이 몰리는 경향이 심해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유소들은 ‘제 살 깎기’식으로 가격을 인하했다. 여기에 알뜰주유소 확산으로 경쟁 강도는 더 세졌다.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 기준 L당 30~40원 저렴한 편이다.
최근 정부 방침대로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도매가가 공개되면 주유소 실적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전국 평균 휘발유·경유 도매가를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역별로 가격 경쟁이 불붙으면서 주유소의 출혈경쟁은 한층 격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소 등을 추가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전환을 꾀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규제와 비용 부담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행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주유소 주유기와 전기차 충전설비가 6m 이상 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유소 부지 규모를 고려할 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주유소가 많지 않다는 평가다.
김정훈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부분 주유소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보조금 지원 등 정책 유인이 필요하다”며 “저수익 주유소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 폐업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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