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이면 한 끼" 입소문에…직장인들 점심 원정 나섰다 [현장+]

입력 2023-03-07 21:00   수정 2023-03-08 11:07

지난 6일 오전 11시께. 연세대 인근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한 돈가스 식당 앞에는 개점시간에 맞춰 입장을 기다리는 고객이 늘어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손님들이 들어서 10개 테이블이 순식간에 꽉찼다. 대학가 식당이었지만 상당수가 대학생이 아닌 직장인들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신모 씨는 외근을 나왔다가 일부러 점심 식사를 하러 들렀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있는) 강남역 인근에서 점심을 먹으면 기본 1만원은 한다. 대학가 물가가 저렴해 식사를 이쪽에서 해결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식당 앞에는 점심시간 내내 대기 손님이 늘어섰다.

이같이 손님을 줄세운 비결은 돈가스 메뉴가 3000원부터 시작하는 '착한 가격'. 외식 물가가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대학가 인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맛집'에 직장인 고객이 몰리는 이유다.
3000원짜리 돈가스·5000원짜리 수제비…누가 먹나 했더니
이날 기자가 찾은 창천동 돈가스 식당은 가성비가 뛰어난 식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현금 결제 시 돈가스 메뉴가 3000원부터 시작하고 국이 함께 나오는 밥을 1000원에 추가할 수 있다. 5000원이면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을 탔다. 실제로 대다수 고객은 돈가스 한 장에 추가로 밥을 주문해 먹고 있었다.

대학가 식당이지만 과잠(학과 점퍼)을 착용하거나 대학생들이 메는 가방을 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고객은 식당을 채운 스무명 중 너댓명에 불과했다.

이날 12시30분까지 식당 줄 앞에서 줄을 선 강모씨 역시 직장인이었다. 강씨는 "홍대입구역 근처 회사에 다니는데 점심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찾았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서 자주 (식당에) 들른다"며 웃어보였다.

인근 가성비가 높다고 소문난 식당들도 직장인이 다수 테이블을 채운 상황은 비슷했다. 한 그릇에 5000원인 한 수제비집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회사는 아현역 앞이지만 점심을 저렴하게 먹기 위해 창천동을 찾았다. 이씨는 "이화여대나 연세대 근처로 점심 먹으러 동료들과 종종 온다. 사무실 근처보다 대학가 물가가 확실히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그릇이 6000원인 설렁탕 집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피크타임인 12시께 끼니를 챙기려는 직장인들이 10명 가까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식비 물가 상승 행진…소비자 주머니 부담 가중

새해 들어 외식비 상승 기조가 이어지면서 직장인들도 점심값을 아끼려는 움직임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부터 외식비가 가파르게 올라 1만원으로는 비빔밥과 냉면 평균 가격(서울 기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기준 대표 외식품목 8개의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10.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8개 중 6개 품목이 전월보다 가격이 올랐고, 전월 대비로는 평균 0.9% 상승했다.

1년 사이 가장 많이 가격이 뛴 메뉴는 16.5% 뛴 자장면이었다. 지난달 6723원까지 올라 7000원에 육박했다. 삼겹살(12.1%), 삼계탕(11.1%), 김밥(10.4%)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비빔밥(8.7%), 냉면(7.3%), 김치찌개(7.5%) 등도 모두 오름세를 나타냈다.


서울 지역 평균 가격 기준 1만원 이하 메뉴는 칼국수(8731원), 김치찌개(7692원), 자장면(6723원), 김밥(3100원) 정도였다.

지난해 외식 물가가 30년래 가장 높은폭으로 오른 데 이어 새해도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 물가는 7.7% 올라 1992년(10.3%) 이후 3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7.5% 뛰었다. 1월(7.7%)보다 상승폭은 다소 둔화됐으나 상승 기조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문외식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히는 공공요금, 가공식품 가격 등 추이에 비춰 외식비 추가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이 전년 동월 대비 28.4%나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요금 가격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0년 1월 이래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여기에 인건비, 물류비 상승과 추가적인 가공식품 가격 인상 가능성 등도 부담 요인이다. 최근 정부의 연이은 압박에 제품 가격 인상을 계획하던 식품기업들이 줄줄이 계획을 철회했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 있다.

심은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원가 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한 후 음식료 업체들의 평균 판매가격 전가 폭은 16% 내외로 추산된다. 달러 기준 곡물 투입가 등 원가율을 고려하면 소재 업체들은 최소한 35%, 가공식품 업체들은 최소한 15% 이상의 판매가격 인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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