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년 6월 28일. 프랑스의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대표적 발레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 하나가 첫선을 보였다.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유령으로 변해버린 여성의 이야기 ‘지젤’이다. 유럽의 설화에 기반을 두고 펼쳐지는 서사와 무용수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고난도 안무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환상적으로 아름답고 슬프다’는 평가 속에 공연은 런던과 빈,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를린, 밀라노 등 유럽 전역에서 이어졌다. 전 세계 발레단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지젤’이 한국에서 공연된다. 그것도 180여 년 전 ‘지젤’을 초연한 발레단을 통해서다. ‘세계 최고(最古)이자 세계 최고(最高)’라는 파리 오페라 발레(POB)가 30년 만에 내한한다.
POB는 ‘POB의 역사가 곧 발레의 역사’라고 할 만큼 유서 깊은 발레단이다. 1669년 루이 14세가 설립하도록 한 오페라 아카데미가 POB의 뿌리다. 프랑스 혁명 등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꾸준히 공연하면서 350여 년의 역사를 써왔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발레 작품 가운데 하나인 ‘지젤’을 초연한 것도 POB다.
‘지젤’은 사랑에 배신당한 처녀 유령 ‘윌리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아름다운 시골 처녀 지젤이 정체를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배신당해 슬픔 속에 죽어 유령 윌리가 되는 비극이다. 윌리는 남자를 유인해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하는 귀신이다. 당대 최고 발레리나였던 POB 소속 카를로타 그리시를 지젤 역으로 점찍은 상태에서 무용평론가 겸 시인 테오필 고티에가 작품을 구상했고, 장 코랄리와 쥘 페로 등이 안무를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1991년 파트리스 바르와 외젠 폴리아코프가 다시 안무를 만든 버전이지만 원작을 최대한 살렸다.
‘지젤’은 무용수들에게도 꿈의 작품이다. 난도 높은 테크닉을 선보여야 해서다. 이뿐만 아니라 1막에서의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과 2막에서 죽어서 유령이 된 지젤은 전혀 다른 인물이 되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 깊은 감성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 공연에서 지젤을 연기하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도로테 질베르는 “기술적으로는 다리의 움직임이 중요하고 점프 후 착지하는 기술 등 상당히 난도 높은 안무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각각의 발레리나마다 자신만의 지젤이 있다고 할 정도로 무용수의 개성과 기술적인 성숙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라며 “스스로도 15년 전 추던 지젤과 오늘날 추는 지젤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게 바로 오늘날까지 ‘지젤’이 활발하게 공연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내한 공연엔 POB의 수석무용수 ‘에투알’ 5명이 무대에 선다. 지젤은 미리암 울드 브람, 레오노어 볼락, 도로테 질베르 등이, 알브레히트는 제르망 루베와 폴 마르크 등이 연기한다. POB의 에투알은 결원이 생길 때마다 지명되는 구조로, 에투알에 지명되는 것은 곧 세계적인 무용수란 일종의 훈장이기도 하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파리에서 보는 공연 그대로를 가져오기 위해 70명의 무용수뿐 아니라 50명의 스태프까지 총 120명이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2년 전 에투알로 지명되며 화제가 된 국내 출신 발레리나 박세은은 출산으로 이번 무대엔 서지 않는다. 대신 지난해 솔리스트 등급 ‘쉬제’로 승급한 한국인 발레리나 강호현이 윌리 역으로 무대에 선다. 강호현은 “박세은이 한국에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줬다”며 “언젠가 POB에 있는 한국인 여성 정단원 무용수 3명이 모두 내한 무대에 오르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연은 8일부터 11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LG시그니처홀에서.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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