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연초효과' 끝물?…실적 탄탄한 기업에만 돈 몰린다

입력 2023-03-08 16:35   수정 2023-03-09 15:23

이 기사는 03월 08일 16:3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연초 효과’로 달아올랐던 회사채 시장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올 초 우량 기업에 조 단위의 매수 주문이 몰렸지만 최근들어 미매각 물량이 쌓이고 있다. 미국의 긴축 기조로 회사채 시장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발행 대기 중인 A급 회사채에 대한 ‘옥석 가리기’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회사채 순발행액 10조원 돌파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2월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0조3071억원으로 집계됐다. 회사채를 상환한 금액보다 발행한 금액이 더 많다는 것이다. 1월 4조6971억원, 2월 5조6100억원이 각각 순발행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조5109억원이 순발행된 것보다 87%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 규모도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현대차증권 등에 따르면 공모 회사채 발행액은 1월 7조6254억원, 2월 10조2416억원 등 총 17조867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최대 규모였던 2021년(14조5506억원)을 넘어섰다.

단기자금 시장에도 많은 돈이 몰렸다. 금융투자협회 종합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머니마켓펀드(MMF) 설정 잔액이 지난달 210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다.

레고랜드 사태?흥국생명 콜옵션 미이행 논란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악의 냉각기를 겪은 채권시장이 살아난 건 연초효과와 금리 인하 기대감이 겹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관투자가는 연초에 자금 집행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 특히 지난해 회사채 시장이 일찍 문을 닫으면서 예년보다 대기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도 반영됐다.

올해 초부터 금리 인상 기조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한 것도 채권시장이 온기를 찾은 주요 배경이다. 회사채 투자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우량채를 중심으로 수요예측에서 대규모 자금이 투입됐다. 1월에는 포스코, KT 등 우량 기업들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역대 최고 규모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지난달에도 LG전자(2조5850억원), LG이노텍(2조7900억원), SK하이닉스(2조5850억원) 등에 조 단위 뭉칫돈이 들어왔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채권 관련 자금 흐름은 연말 북클로징과 펀드 환매에 따른 대규모의 유출을 보인 이후 연초에 다시 유입세가 나타나는 게 특징”이라며 “올해는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자금 재유입이 큰 규모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금리 변동성 심화에 회사채 시장 위축 우려
채권시장에 퍼진 온기는 ‘연초 효과’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분위기다. 국채 금리 변동성이 커진 것도 채권 시장 강세가 주춤한 요인이다.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어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최종적인 금리 수준이 이전 전망도 높은 것이라고 경고했다. 긴축의 고삐를 죌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모 회사채 시장도 강세에서 약세 흐름으로 접어들었다. 현대차증권(AA-)은 지난 3일 10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85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중소형 증권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척블루파워(A+)는 지난 7일 2250억원 모집에 8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기조에 어긋나는 석탄발전 산업에 속한다는 점에서 기관투자가로부터 외면받았다. ABL생명 후순위채(A)도 수요예측에서 목표 물량인 700억원을 채우지 못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발목을 잡힌 건설업계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토지신탁(A-), 한신공영(BBB+) 등 건설업 관련 기업들이 지난달 열린 회사채 시장에서 미매각을 피하지 못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부 건설사들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시장에서 유동성 확보에 나서고 있다. 태영건설(A)은 지난달 P-CBO를 통해 300억원을 조달했다. 신세계건설(A)과 KCC건설(A-)도 각각 200억원어치의 P-CBO를 발행했다. P-CBO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회사채를 모아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한 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제도다.

부동산 PF 리스크로 채권시장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지난 6일 건설업계 부담을 줄이기 위해 28조원의 정책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단기자금 성격인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ABCP)을 장기성 대출로 전환하는 3조원 규모 보증을 신설해 차환 리스크도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A급 회사채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같은 A등급 내에서도 실적과 업종 등에 따라 흥행 성적이 엇갈리고 있다. HD현대의 건설기계 계열사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A-)는 낮은 신용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실적에 힘입어 회사채 ‘완판’에 성공했다. 이달 수요예측을 진행하는 한일시멘트, GS엔텍과 신세계건설 등의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채권시장은 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 이슈 등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이어갔다”며 “연말 연초의 강한 랠리를 마감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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