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이.’ 리움미술관 고미술 담당 연구원들은 이번 전시에 나온 ‘백자청화 인물문 병’(19세기)을 이렇게 부른다.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속, 일어서서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랑스러운 소녀를 보고 연구원들이 붙인 애칭이다. 누가 소녀를 부르기라도 했던 걸까.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그네를 타던 소녀가 고개만 돌려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다.
이 흥미로운 유물에는 이번 백자전 구성의 세 가지 특징이 모두 담겨 있다. 먼저 ①‘다각도 전시’다. 기존에 열린 고미술 전시 대부분은 유물을 벽에 붙은 전시 케이스 깊숙한 곳에 넣었다. 작품 손상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번 백자전에서는 전시 케이스를 벽에서 떼어내 유물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담배를 피우는 여성, 묘한 표정으로 나뭇가지를 높이 치켜들고 걷는 또 다른 소녀 등 도자기의 다른 면에 그려진 그림까지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대신 리움은 작품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한 지지대를 준비했다. 도자기의 곡면을 미리 실측한 뒤 유물에 딱 맞는 ②‘맞춤형 지지대’를 만든 것. 미술관은 황동으로 만든 이 지지대에 유물과 같은 색을 입힌 건 물론이고 그림까지 따라 그렸다. 관객들의 작품 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덕분에 “지지대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관객도 적지 않다.
이렇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전체 그림을 한눈에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관객들을 위해 미술관은 백자의 무늬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 보여주는 ③‘리움 DID(Digital Interactive Display)’ 장치에 ‘펼침화면 보기’를 준비했다. 전시장 입구와 내부에 비치된 이 장치를 이용하면 작품 그림이 한눈에 펼쳐진다. 작품 소장자도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둥근 지구를 2차원 지도로 옮겨 그리면 다소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도자기 곡면에 있는 그림을 평면으로 옮기느라 그림 비례 등이 다소 왜곡돼 있다. 하지만 작품을 즐기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도자기 속 그림을 하나의 그림으로 쭉 펼쳐놓고 보니 도자기로만 봤을 때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 담겨 있다. 어느 소녀가 나뭇가지를 들고 춘향이에게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소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문득 춘향이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성수영/이선아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