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임원이던 스탠리 아담스는 서구 기업사에서 휘슬 블로잉의 효시 같은 사람이다. 그는 로슈가 비타민 제품의 가격 담합으로 폭리를 취했다며 유럽경제공동체(EEC) 규제당국에 제보했다. 그러나 EEC 당국은 로슈에 이를 통보하면서 그의 이름도 같이 알려줬다. 아담스는 산업 스파이와 기술 절도 혐의로 6개월간 스위스 감옥에서 복역했고, 아내마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가 명예를 회복한 것은 10년간의 긴 소송 뒤였다.
휘슬 블로잉으로 인생 역전한 케이스도 있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서 일하던 브래들리 비르켄펠트는 미국 국세청(IRS)에 접근해 UBS의 불법 조세피난처 정보를 제공했다. IRS는 이를 통해 수천 개의 비밀계좌를 파악해 7억8000만달러의 세금을 추징했고, 비르켄펠트에겐 1억400만달러의 막대한 특별 보상금이 주어졌다.
국내 기업도 앞으로 휘슬 블로잉에 더욱 주의해야 할 것 같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400명을 대상으로 납세 의식을 조사한 결과, 근무하는 회사가 탈세한 사실을 알았을 때 ‘회사에 해가 되므로 국세청에 알리지 않겠다’는 응답은 23.9%에 불과했다. 나머지 76.1%는 범죄 행위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신고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36.7%는 재직 중에는 함구하다가 퇴사하면 신고하겠다고 했고, 젊은 층일수록 신고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실제 휘슬 블로잉으로 문을 닫은 기업이 많다. 과거 호남전기, 범양상선, 동명목재, 율산 등은 투서 한 장으로 무너졌다. 탈세 제보가 공익보다는 사적 보복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도 적잖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가장 큰 죄는 걸린 죄’라고 하듯,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 게 상책이다.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MZ세대와의 직장생활에선 더욱 그렇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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