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 아이가 학용품을 잃어버렸다고 울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다. 교실에서 잃어버렸으니 같은 반 누군가가 훔쳐간 거라고 다들 단정지었다. 담임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아라.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만 들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화난 선생님이 부리나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만에 양동이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친구 도움을 받아 모자란 기억을 되살린다. 선생님이 “앞에서부터 한 명씩 나와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 물감에 손을 담가라. 물감은 닦으면 괜찮지만, 거짓말한 사람은 손이 썩어들어갈 것이다”라고 했다. 손이 썩어들어간다는 말이 두려웠다. 아무도 나가려 하지 않았다. 몇 번을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자 선생님이 맨 앞줄에 앉은 학생을 끌어내려 했다. 책상을 끌어안으며 버티던 여자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자 모두 따라 울었다. 뒷자리에 앉았던 나는 무서워 뒷문으로 도망쳐 집으로 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울며 집에 돌아온 아들을 본 어머니는 학용품 도난사건을 듣고 “네가 훔쳤느냐?”고 물었다. 훔치지 않았다고 하자 밖에 있던 아버지를 찾아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벌 받는 중간에 도망치면 네가 훔쳐간 게 된다”며 아직도 두려워 이빨을 부딪치며 떨고 서 있는 나를 학교로 돌려보냈다.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교실이 보이는 담장 뒤에서 울고 있는 나를 뒤쫓아온 어머니가 교실로 떠밀어 들여보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 교실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집에 다녀가신 그날 밤 아버지가 나를 꿇어 앉혀놓고 하신 말씀이다. “하늘에는 악한 사람을 잡는 큰 그물이 있다. 그물코가 넓긴 하지만 건져 올려야 할 것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하늘은 누가 훔쳐갔는지를 다 알고 있다.” 한참 커서야 그날 하신 말씀이 고사성어 ‘천망회회’란 걸 알았다. “하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73장 임위(任爲) 편에 나온다.
훗날 아버지는 노자의 앞 문장을 인용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늘의 도리는 오래 두고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이다. 악인들이 득세해 날뛰면, 당분간은 그대로 두었다가 기회를 보아 멸망시킨다. 하늘은 입이 없어 말은 하지 않지만, 길게 보면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을 내린다. 하늘은 우리 머리 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일일이 관찰한다”라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그럴 때 집으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고 사내답지 못한 행동이다. 답답할 땐 하늘을 쳐다보아라.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디서든 보이고, 누구에게나 보이고, 언제든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하늘을 믿어라. 버티고 서있던 앞산도 불도저가 깔아뭉개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도 물길을 틀어 버리지만, 하늘은 언제나처럼 거기에 있다”라고 몇 차례나 말씀했다.
자꾸 변하는 데서는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믿으면 예측할 수 있고 앞을 내다볼 수 있어 힘이 나온다. 힘이 있어야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믿음을 싹트게 하는 하늘을 종교로 가지게 됐다. 나를 떳떳하고 힘차게 만든 큰 뒷배다. 신이나 초자연적 절대자를 믿고 따르는 마음이 신앙심(信仰心)이다. 쉽게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손주에게 꼭 일러줄 심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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