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고향이 어디냐(where are you from)”는 일상적인 인사말이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본토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며 크리스마스 축하 인사를 나누는 것이 금기시되고, 디즈니와 같은 미디어 기업이 서양 동화의 주인공조차 백인이 아닌 인물로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에선 이런 분위기가 정치적 갈등의 핵심 진앙으로 떠오르고 있다. 낙태나 증세처럼 보수와 진보가 늘 맞붙어온 문제들이 아니라 성별이나 인종, 지역, 계층 등에 따른 이슈가 싸움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사상적 배경보다는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다. 벤 샤피로의 <권위주의적 순간>은 정체성 정치가 불러올 미래에 대해 힌트를 준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서른아홉 살 샤피로는 미국 보수진영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으로 보수적 가치를 주장해왔는데 2015년엔 온라인 매체 ‘데일리 와이어’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진영이 갖고 있는 낙태나 동성애, 분배 정책 등의 정치적 노선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손을 맞잡고 협력할 지점이 있다고 한다. 낙태에 대한 생각이 달라도 정체성 정치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샤피로에 따르면 정체성 정치는 표현의 자유 자체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책의 제목인 ‘권위주의적 순간’ 역시 좌파 권위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해 표현의 자유가 질식하는 시점이다. 샤피로는 좌파 권위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미국적 가치를 부정하는 좌파의 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봉쇄하려는 움직임이다. 대학 교육부터 실리콘밸리 대기업까지 좌파 권위주의가 득세하면서 그들의 주장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봉쇄됐다고 비판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면서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점거 등 눈에 보이는 우파 권위주의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샤피로는 좌파 권위주의 사례를 열거한다. 우파 인사들과의 대화 자체를 금기시하고, 해당 인사와 교류한 사실이 알려지면 단체로 공격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인종이나 성별 차별의 소지가 있는 특정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내 다양성 교육을 받거나 낮은 인사고과를 받는 것 역시 좌파 권위주의에 따른 것이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좌파 권위주의자들이 어떻게 득세했는지 다루고 있다. 이들의 전략을 알아야 대항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샤피로는 집단별 이익을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의 뿌리가 루스벨트부터 린든 존슨, 지미 카터까지 미국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과 함께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체성 정치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목한다. 정체성 정치가 2010년대부터 활발하게 퍼진 것에 대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여성과 성소수자, 이민자 등 비주류를 규합하는 ‘교차성 연대’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샤피로의 주장들은 일견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논리 전개가 상당히 거칠고 근거가 불명확하다.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정체성 정치의 확산을 위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빠져 있다. 교차성 연대라고 비판한 내용도 미국의 인종 다양화에 대응한 선거 전략의 변화로, 이것이 곧 정체성 정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샤피로는 좌파 권위주의 세력이 대학을 장악하면서 대학이 정체성 정치를 재생산하는 곳이 됐다고 비판한다. 대졸자와 비대졸자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그럴듯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
샤피로의 일성에 아쉬움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상당수 정치적 갈등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영남과 호남 사이에 있지 않다. 남혐(남성 혐오)과 여혐(여성 혐오) 사이에 있고, 사대남(40대 남자)과 이대남(20대 남자) 사이 어딘가에 있다. 심지어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가, 어떤 개그 코드를 좋아하는가도 일종의 정치적 표현이 된다. 이 같은 이슈가 전면에 부상했을 때 한국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도 이 책의 또 다른 의미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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