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왜 안돼" 물었다가…'직장 내 괴롭힘' 신고 당했어요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3-03-12 06:47   수정 2023-03-12 13:36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직장인 A씨는 업무 시간 중 연락이 되지 않는 후임에게 "연락이 왜 안 되냐"고 물었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후임이 "나를 감시하는 거냐"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한 것.

B공공기관에서는 한 신입 직원이 선배들의 권유에도 단 한 번도 부서 회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전체 회식 때도 불참할 것으로 예상하고 부르지 않았다가 신입 직원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노무 법인과 공공기관에 '직장내 괴롭힘'으로 접수된 실제 신고 사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19년 1월 입법 이후 1500일을 돌파했다. 한국의 직장 내 뿌리 깊은 부조리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는 등 직장 문화를 크게 바꿔놨다는 점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다만 그만큼 허위·과장 신고도 급증하면서 사업장 내 '혼란' 부르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복 신고도 부지기수…‘기소율 0.7%’
1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이후 2022년까지 3년 반동안 약 2만354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법이 시행된 2019년 반년 동안은 2130건이 신고됐지만 2020년 5823건으로 급증했고, 2021년 7774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도 7800여건을 넘어서 하루 21.4건꼴로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전체 2만3000여 건 중 고용부가 '개선 지도'를 내린 경우는 2877건(12.2%), 검찰송치는 415건(1.7%)에 그친다.

송치 사건 중 실제 기소로 이어진 건은 0.7%(165건)에 불과하다. 고용부와 검찰이 간여한 사건을 다 합쳐도 14% 수준이다.

반면 취하는 8927건(37.9%)이며, 법 위반 없음 판단 5438건(27.3%)이 포함한 '기타 사건(불출석 등)'은 1만1265건(47.8%)이다.

일각에서는 낮은 기소율을 두고 “정부가 괴롭힘을 방치하고 있다”며 날을 세우지만, 현장에서는 "괴롭힘으로 보기 어려운 사례도 정말 많다"고 설명한다. 서울지방고용청의 한 근로감독관은 "부당해고, 임금체불 등 신고사건에서도 ‘괴롭힘’ 신고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근로자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신고 당한 직원이 조사를 맡은 인사팀을 신고하거나, 신고인에 대한 보복으로 맞신고하는 등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사건도 부지기수"라며 "사업주가 직원과 모종의 거래를 해 특정 직원에 대한 허위신고를 사주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야말로 '직장 대혼란' 시대"라고 말했다.
○직장 초토화..."허위신고 제재 규정 필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고 허위신고에 대한 제재가 없다 보니, 틈새를 악용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고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일단 신고하고 보자’는 흐름도 포착된다.

한 대형 노동단체 소속 C변호사는 얼마 전 한 공공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징계 사건의 징계 위원으로 초빙돼 들어갔다가 이상한 사례를 접하게 됐다.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이 어떻게 괴롭힘을 당했는지 진술이 불분명해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발령 난 부서에 가기 싫어서 부서장을 신고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직원의 부서 이동은 중단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자’에게는 ‘불이익한 인사 처분’을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서울 소재 노무법인에서 일하는 D 노무사는 서울지사 직원을 광주지사로 발령낸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신고된 사건의 상담을 맡게 됐다. 이 노무사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1년씩 내려가는 거라, '부당전보'라는 주장은 안 먹힐 걸 알았던 것 같다"며 "결국 다른 직원이 내려갔다"고 전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 신고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서 "괴롭힘 처벌 조항을 보유한 국가(한국,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루마니아, 버뮤다 등) 중 한국만 유일하게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서 연구위원은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해외 입법 사례에 비춰봐도 '빈도''강도'등 객관적 기준 없이 ‘괴롭힘’의 판단을 ‘주관적 해석’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대표 노무사는 “어떤 행동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것과 허위 신고는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EU 등 선진국들도 허위 신고에 대해서는 인사 조치 등 제재를 한다는 노사 간 컨센서스(동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직장 문제를 사내에서 해결하기보다는 법적 해결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괴롭힘’ 관련 구제신청 사건은 2021년 155건에서 지난해 240건으로 54.8%나 급증해 전체 사건 유형 중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중노위는 이에 대해 "새로운 노동관행을 주도하는 MZ세대 중심으로 괴롭힘 이슈 제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사도 신고가 들어가면 적극적인 대처를 하기보다는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의 탓으로 몰아가거나 부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일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 낭비도 급증세다. 자체 해결이 어려운 사건 특성 탓에, 사건이 발생하면 로펌·노무법인 등 외부 전문가를 불러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좁은 직장에서 서로 신고하는 바람에 사업장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사내 불신 문화가 형성되는 등 무형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에 시행 5년째를 맞아 근로기준법 규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앞서 언급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허위 신고 피해자들은 가장 효과적인 '허위 신고 방지책'으로 △허위신고자 처벌 규정 마련 △명확한 직장 내 성립기준 마련 △부적절하게 대응한 사용자·관리자 처벌 조항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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