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부위원회와 관련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86%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투입될 기회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사단체든, 시민단체든 (정부위원회를) 독점하는 건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위원회에서 노동계 몫을 양대 노총이 ‘독점’하며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다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장관은 정부의 ‘노조회계 투명화’ 조치에 대해선 “노조탄압이 아니다”며 “(노조를) 탄압할 수도 없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 방안을 두고 노동계가 “장시간 근로를 조장한다”고 비판한 데 대해서도 “악의적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총근로시간은 늘리지 않으면서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최대 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이 떠오른 가운데 지난 8일 서울 장교동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이 장관을 만났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이 이슈입니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다행히 정부 정책을 따르겠다는 노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조회계 투명화 조치를 꺼낸 건 평상시 노조회계가 조합원에 의해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조회계 투명화는 노조의 대내적 민주성과 대외적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재정 운용이 불투명하면 노노 갈등뿐 아니라 조직력 약화로 사용자와의 교섭과 노동자 권익 보호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정부는 회계장부 비치·보존 여부를 점검해 미제출 노조엔 과태료를 부과하고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할 방침입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습니다. 정부가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겁니다. (노란봉투법은)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하청업체 사업주가 아닌)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법이 시행되면 모든 공공기관 노조는 기획재정부로 달려갈 것이고, 현대자동차 하청업체는 현대차에 직접 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해 노동계가 반발하는 건 어떻게 봅니까.
“노동계는 ‘장시간 근로를 조장한다’고 비판하는데 악의적 프레임입니다. 제도 개편의 본질은 주 52시간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고, 근로시간 총량은 늘지 않고 분기 단위 이상 땐 오히려 줄어듭니다. 주 69시간 노동이 상시화할 것이라는 노동계 주장도 주 5일제, 교대제 등을 감안하면 비현실적 주장입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연장근로를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1997년 근로기준법에 정의만 해놓은 근로자대표제를 손질해 근로자의 실질적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근로시간 개편 문제는 노동자의 권리의식, 사용자의 준법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3박자가 함께 돌아가야 실질적인 안착이 가능한 과제입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임금체계 개편도 쉽지 않은 과제 아닌가요.
“임금체계 개편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노조의 반대, 정보 부족, 노노 갈등 세 가지입니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임금체계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사회 전반에 문제의식이 충분한 만큼 차근차근 풀어가려고 합니다. 업종·직종별로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 임금체계가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지난달 출범한 상생임금위원회에서 임금격차,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노동개혁 메뉴가 너무 많아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노동개혁이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노사) 모두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노동개혁이) 노사자치 침해라고 말하는데, 자치를 떠받치는 전제가 법치입니다. 법치에는 노사가 따로 없습니다. 노(勞)든 사(使)든, 그리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치는 확실히 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기도 합니다.”
▷2015년에도 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과거 정부의 개혁은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보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 일부 제도를 수정하려다가 미완에 그쳤습니다. 현장의 의식·관행 등 문화적 요인을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번 정부에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현장의 잘못된 관행과 의식을 바로잡는 근본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정부가 전문가 위주로 개혁과제를 꾸리면서 사회적 대화 노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개혁 추진 방식에는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문가와 노사 당사자가 동시에 참여할 수도 있고, 전문가가 우선 논의한 뒤 노사 당사자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개혁방식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전문가 중심으로 우선 논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노동계와 소통을 확대하고자 노력했지만 민주노총은 1999년 사회적대화기구를 탈퇴한 이후 현재까지 참여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도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와 미래세대를 위해 책임 있는 사회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의 상생임금위원회 참여에 민주노총이 비판적인데요.
“한 총장은 30년 넘게 비정규직 등 ‘바깥 노동시장’에 있는 취약계층 근로자 처우와 이중구조 개선에 힘써온 노동현장 전문가입니다. 상생임금위원회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시키는 대로 해) 위원회가 아니니 필요한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위원회에도 그냥 위원 한 명으로 보지 말고, 취약계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중하게 들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는 양대노총의 대표성 문제도 나옵니다.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위원이 다양한 분야의 계층을 대표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 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노사단체든 시민단체든 누군가 독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약자 보호 관점에서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86%의 청년, 여성, 영세 소상공인 등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투입될 기회가 더 많아지도록 제도나 운영방식 등을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근본적으로는 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정부가 그동안 노사단체에 대표권을 부여한 것은 구성원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고 위원회에서 정리된 부분을 각 조직에 가서 교육, 설득하라는 것인데 과연 취지대로 돼왔냐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청년, 여성, 비정규직 위원이 들어온 것도 그런 문제의식이 쌓인 결과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보완 방안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장관으로 일한 10개월간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 사태입니다. 법과 원칙에 기반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입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촉발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큽니다.”
30년 넘게 노동운동에 투신…한노총 때도 '노사상생' 역설
이 장관 자신도 “노총에 있을 때부터 평생 써온 이메일 주소가 ‘윈윈 메이커(win-win maker)’”라며 노사 상생을 역설해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취임 전 고용부 장관 후보자로 이 장관을 지명하면서 “노사관계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1961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숭실대 대학원 노사관계학 석사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 대외협력본부장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사무처장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2017~2020년)
백승현/곽용희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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