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68년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 수상이었다. 1935년 에히메현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태평양 전쟁 패전을 겪었다. 이후 평생에 걸쳐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1958년 단편 <사육>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당시 나이 23세로 최연소 기록이었다. 초기에는 전쟁 경험을 소재로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장남 히카리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뒤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사회적 편견, 어려움을 소재로 한 사소설을 주로 썼다. 그때 쓴 장편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30대 후반 이후는 사소설적인 경향을 담으면서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포괄하는 객관적인 소설을 쓴 시기였다.
고인은 작품뿐 아니라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도 존경받았다. 2004년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기 위해 다른 석학들과 ‘헌법 9조의 모임’을 결성해 개헌에 반대했다.
오에는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혔다. 2015년 한 포럼에서는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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