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사회보험 재정전망 주기 5년→2~3년 단축 추진

입력 2023-03-14 16:27   수정 2023-03-14 16:36


정부가 8대 사회보험(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의 장기적 적자 규모를 추산하는 재정계산 주기를 현재 5년에 한 번에서 2~3년에 1회로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사회보험마다 제각각인 재정계산 시기도 올해부터 통일하기로 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갈수록 악화되는 사회보험의 재정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해 장기적으로 연금개혁 등에 활용하기 위한 조치다.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을 2~3년마다 동일한 시기에 수행하자는 의사를 사회보험별 담당 부처에 전달해 최근 합의를 이끌어냈다. 8대 사회보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국민연금 재정추계 작업이 이달 완료되는 만큼 다른 7개 사회보험 역시 올해 안에 재정계산 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다.

8대 사회보험은 국가의 장기적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지금까지 재정계산 주기가 제각각이었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은 주기가 5년으로 같지만 수행 연도가 다르고, 산재보험은 3년마다 재정계산이 이뤄진다. 건강보험·노인장기요양보험·고용보험은 재정계산을 몇년에 한 번씩 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 자체가 없다.

기재부는 지금도 8대 사회보험이 향후 40년 동안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장기재정전망’을 5년마다 해오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진행된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결과를 취합하는 방식이다 보니 정확히 재정상태를 진단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선 올해부터 인구구조 등의 변수를 동일하게 설정해 재정계산을 모두 실시하고,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계산 주기를 2~3년으로 단축·통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로 불어날 사회보험 적자..."더는 저마다 따로 못 둬"
기획재정부가 보건복지부, 국방부 등을 설득해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주기를 단축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고령화로 악화될 예정인 각 사회보험이 장기적으로 정확히 얼마나 재정에 부담을 줄지 현재로선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시기와 주기를 통일해 정확한 추계가 이뤄져야 향후 재정투입 규모와 연금개혁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유명무실 장기재정전망의 한계
정부가 그동안 사회보험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기재부는 8대 사회보험을 포함해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여건 변화가 향후 40년 동안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장기재정전망’을 2016년 이후 5년 주기로 해오고 있다.

문제는 5년이란 주기가 지나치게 길다는 점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기재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 ‘사회보험 재정추계 연구’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은 사회보험이 장기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주기가 가장 긴 나라다. 미국과 스웨덴, 덴마크는 매년 장기재정전망을 하고, 뉴질랜드는 최소 4년에 한 번, 독일도 3~5년에 1회 장기재정전망에 나선다. 조세연은 “(한국은) 매년 발생할 수 있는 제도 변화의 장기적 영향을 가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기의 단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의 장기재정전망 주기가 선진국들과 비교해 긴 결정적 이유는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주기가 모두 다른 법률에 따로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에 의해 보건복지부 주도로 5년마다 향후 70년의 재정전망을 하도록 규정돼있다. 반면 산재보험은 산재보험법에 따라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재정추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3년마다 향후 45년 동안의 재정전망을 해야 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법률에 의해 재정계산 주기가 규정된 탓에 기재부는 통합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분석하는 장기재정전망의 5년 주기가 길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그동안 문제를 개선하지 못했다. 특히 어렵게 진행한 장기재정전망마저 서로 추계 시기가 다른 여러 사회보험의 결과를 취합한 형태이다 보니 정확성이 결여된 문제가 있었다.
법률 개정해 주기 2~3년 1회로 규정
갈수록 가팔라지는 고령화로 인해 더 이상 장기재정전망을 유명무실하게 방치할 수 없던 윤석열 정부는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시기부터 맞추기로 했다. 마침 국민연금이 기존 5년 주기에 따라 올해 재정계산이 진행된 점이 각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시기를 보다 쉽게 일치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활용된 인구구조 변화, 성장률 등 변수를 다른 사회보험에도 그대로 활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당초 2025년에야 진행됐을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재정계산도 올해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재정계산 주기를 2~3년으로 단축시키는 것은 법률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게 기재부 판단이다. 이에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사회보험 통합 재정추계(가칭)’라는 이름으로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을 장기재정전망과는 별도로 2~3년마다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할 방침이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회의에서 “재정평가 주기를 3년으로 단축할 경우 대선 주기(5년)보다 짧아지면서 모든 정권에서 최소한 1~2회 재정평가를 하게되기 때문에 평가 결과가 정치화되는 영향이 축소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재부의 사회보험 재정전망 개편이 궁극적으로 연금개혁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4대 직역연금 재정계산 시기와 주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향후 직역연금 통합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8대 사회보험의 재정계산 통합 작업은 사회보험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일 뿐, 최근 논의되고 있는 연금개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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