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 경제, 50년만의 위기 데자뷔

입력 2023-03-14 17:36   수정 2023-03-15 00:26

“50년 전처럼 모든 확실성이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최근 경제 상황을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산유국의 감산이 이어지자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는 한 달 만에 12달러까지 치솟았다. 1차 오일쇼크다. 미국 경제성장률은 1973년 6.5%에서 이듬해 -0.5%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1974년 물가상승률은 1년 만에 25% 상승했다. 특히 전기 요금은 연간 85%나 치솟았다. 명동과 시청 앞 네온사인이 70% 이상 꺼질 정도였다. 1960년대 초 15원 수준이었던 짜장면값은 150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건실했다. 당시 한국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1968년 설립된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 삼성전자도 대외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지만,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에 투자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이뤄진 인수합병(M&A)이 대한민국 반도체 신화의 첫걸음이 됐다. 같은 시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우리 민족은 500년 전에 이 배를 건조했다”며 영국에서 8000만달러를 유치했다. 그리고 그리스로부터 두 척의 선박을 선주문받았다. 정 회장은 “돈을 벌려면 세계의 돈이 몰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며 주위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에 도전장을 던졌다. 정 회장은 공기(工期)까지 단축하며 건설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74년 사재를 털어 민간 기업 최초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장학사업은 외환위기 상황에도 지속돼 현재까지 장학생 4261명을 지원했고 세계 유명대학 박사 861명을 길러냈다. 한국 경제를 이끈 경영인들이 맹활약한 그해 ‘제1회 상공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2000여 명의 상공인이 국립극장에 뭉쳐 결의문을 낭독했다. “기업가정신과 경영합리화로 해외 인플레 요인을 최대한 흡수하고, 공정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로부터 50년이 흘러 지난 13일 ‘상공의 날’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50년의 도전 100년의 비전’을 모토로 기업들의 지난 반세기를 격려하고 다음 한 세기를 내다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는 단 하루였지만 대전환과 ‘3고(高)’ 행진을 이어가는 우리 기업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기다.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며 우리의 안보까지 책임질 첨단기술을 잉태하고, 첨단기술로 사회의 사각지대를 메워가는 ‘신(新)기업가정신’이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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