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장의 핵심은 곽 전 의원이 김만배로부터 금융회사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의 알선에 관해 약 25억원어치의 금품 및 이익을 수수했으며,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해서도 동액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만배가 대주주인 화천대유가 곽 전 의원 아들에게 지급한 성과급이 사회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고, 곽 전 의원으로 하여금 H은행이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잔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등 알선 대가로 아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직무관련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통념상 곽 전 의원의 아들이 금품 및 이익 내지 뇌물을 받은 것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아들이 결혼해 곽 전 의원과는 독립해 생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 곽 전 의원이 생활비 명목으로 아들에게 돈을 지급했다고 볼 근거가 없는 점, 아들이 화천대유로부터 받은 성과급 운용에 관해 곽 전 의원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아들의 계좌에 입금된 성과급이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지급됐거나 그를 위해 사용됐다고 볼 사정도 없는 점 등을 들었다.
사건 기록을 보지도 못했고 관련자들의 증언도 직접 듣지 않은 상태에서 판결문만으로 재판부의 이번 판단이 타당하고 합리적인지를 결론지을 수는 없다. 다만 220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살펴보면 ‘형사재판의 원칙에 충실한 판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 피고인이 무고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형사재판에서 무죄란 ‘결백(innocent)’이 아니라 ‘유죄가 아님(not guilty)’이다.
형사재판에서 공소사실에 대한 증명의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을 판단할 뿐 기소되지도 않은 공소사실을 판단할 권한은 없다. 법원은 이른바 ‘나쁜 놈’을 찾아내 처벌하는 ‘원님’이 아니다. “나쁜 놈이니 무조건 어떤 죄목으로든지 중형을 선고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통할 수도 없거니와 통해서도 안 된다.
과거에는 사법부 판결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했지만 최근에는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다. 여론과 배치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재판부가 근거 없는 신상털기식 비난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작금의 현실이다. ‘여론재판’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사법부 판결은 여론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재판은 어느 쪽을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한가를 따지는 여론전이 아니라 어느 쪽의 주장이 법적 근거와 증거, 합리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따지는 공정하고 치열한 법리다툼이 돼야 한다. 같은 이유로, 판결에 대한 비판은 여론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가 아니라 재판의 진행 과정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거나 판단에 이르는 논증 과정에 문제가 있을 때 이뤄져야 할 일이다.
민철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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