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이 펼치는 일종의 핵 전쟁이다."
오는 16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이 그린산업 육성을 위한 양대 법안을 발표합니다. 이른바 핵심원자재법(CRMA)과 탄소중립산업법인데요. 2개 법안들은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IRA가 미국의 전기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를 키우는 데에 3690억달러(약 488조원)짜리 뭉칫돈을 들이겠다며 보조금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와중에 갑자기 EU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이 핵 전쟁을 벌이다니 무슨 일일까요? 바로 원자력발전의 친환경성을 둘러싼 설전이 오간다는 의미입니다. 편가르기까지 하는 모양새라고요.
하지만 지난 14일 EU 당국자들의 열띤 토론 끝에 원자력발전이 친환경 산업 항목에서 돌연 삭제됐다구요. 회담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원전을 찬성한 측에는 우르술라 폰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 상임위원 등을 비롯해 주로 동부 유럽 국가 출신 8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반대편에는 네덜란드를 비롯해 남부 유럽 출신들이 4명 포진해있었고요.
추후 협상을 거쳐 원전이 다시 혜택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아직 모를 일이죠. 회담에 참석한 한 외교관은 "원자력은 저탄소 발전이 분명하지만, 재생가능하지는 않다"고 못박았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는 "프랑스 측이 거는 싸움에 불과하다"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가 왜 그럴까요? 원전이 자신들의 최대 장점이기 때문이죠.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제일 가는 원전 기술 강국입니다. 작년 말 기준 원자로 56기를 보유했지요.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적으로 탈원전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프랑스도 마지못해 동참해야 했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죠. 특히 경쟁국이자 이웃국가인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 주도로 탈원전을 강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이럴 때 프랑스는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독일에 비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비중이 상당히 낮은 데다 2021년 기준 에너지 독립 비율이 53.4%로 EU에서 가장 높았으니까요. 에너지 대란을 비껴간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국민들은 "역시 원전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프랑스의 원전 사랑은 더욱 노골적으로 거세질 겁니다. 앞서 이달 초 이미 그런 움직임이 포착됐네요. 스웨덴에서 열린 에너지장관 회의에서 프랑스 측 인사가 "핵 동맹을 결성하자"며 헝가리, 불가리아 등 10여개국에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EU 당국이 원전에 호의적인 정책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는 것이지요.
독일은 이런 프랑스의 행보가 매우 거슬립니다. 탈원전 이슈는 자신들의 어젠다이니까요. 독일은 작년 에너지 대란 탓에 남은 원전들을 전면 폐기하려고 했던 일정을 잠시 연장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연합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녹색당 주도로 여전히 "원전보다는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중점을!"이라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한 EU 관계자는 "프랑스와 독일의 핵 관련 전면전"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이 전쟁의 1차전이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16일 발표될 탄소중립산업법을 기대해 보시죠.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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