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호주에 최대 다섯 척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한 뒤, 국내 방산업계에 '이상기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한국의 무기수출 규모가 74% 증가(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하는 등 K방산이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해외시장에서 국제정치의 역학적 이유로 수주에 실패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다.'K방산'이 떠오르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국가도 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오커스의 이번 사업은 노후화된 호주의 콜린스급 잠수함을 대체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에 맞서기 위한 목적이 있다. 우리 외교부는 "호주의 재래식 무장 원자력 추진 잠수함 획득을 위한 협력 관련, 3국과 국제사회 간 투명한 정보공유가 이뤄져 온 점을 평가한다"며 호주의 잠수함 사업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방산업계는 그다지 표정이 밝지 않다. 국내 방산업체는 호주 해군이 노후화된 콜린스급 잠수함 여섯 척을 대체한다는 가정 하에 지난해부터 호주시장에 잠수함 수출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번 AUKUS 발표로 해당 사업은 무산이 확실시 됐다.
지난 해 대우조선해양은 우리 해군에 인도된 모델(3000t급 도산안창호함)이 포함된 KSS-III(장보고-III) 잠수함 두 종을 호주에 제시했다. 당시에도 호주는 미국·영국에서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기존 호주 잠수함의 퇴역이 2026년으로 전망돼 한국이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해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이 호주를 방문해 호주 국방과학기술국(DSTG)과 호주 방위사업청(CASG) 인사들을 만나고, 잠수함을 포함한 한국 방산 세일즈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호주는 현재 보유 중인 콜린스급 잠수함 여섯 척의 수명을 2036년까지 연장해 새 잠수함 도입 때까지 전력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도산안창호함 개발사인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호주) 잠수함의 전력공백을 영업기회로 판단해 회사의 잠수함 건조를 제안했었다"며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국산 잠수함 시장 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문제를 계기로 해외 시장에서 우리 방산업체들의 수출 현황도 다시 점검받는 분위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군의 차세대 장갑차 사업에서 올해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IFV)' 수주를 노리고 있다. 최근 호주군 당국으로부터 경쟁 장갑차인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와 비교해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독일이 최근 '박서 전투정찰차량(CRV)'을 내년께 호주 퀸즐랜드 현지 공장에서 공급받는 방안을 호주 정부와 논의하고 있어, 주요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독일 라인메탈이 개발한 '박서 CRV'는 호주군에 2021년부터 배치된 다목적 모듈형 장갑차다. 호주 육군은 이 장갑차를 211대 가량 쓰고 있다. 라인메탈은 호주서 현지 생산하는 물량을 늘려, 최근 '재무장'을 준비 중인 독일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호주의 현지매체인 파이낸셜리뷰에 따르면 최근 호주 주재 독일 대사는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는 호주산 박서 CRV를 독일 군용으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호주 정부와 공유했다"고 밝혔다.
군사 자유기고가인 최현호 밀리돔 대표는 "호주를 비롯해 유럽·미국 등 서구권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순히 '싸고 좋은' 품질 만으로 시장 개척이 어렵다"며 "최근 노르웨이 전차 수주전에서 독일 레오파드 전차에 밀려 K2가 수주에 실패한 게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국산 K2 '흑표' 전차의 진출 가능 국가로 꼽혔던 루마니아도 최근 미국 전차로 눈을 돌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군사매체 '디펜스블로그'는 루마니아 군 장성의 발언을 인용해 "(루마니아가) 미국 에이브럼스탱크 1개 대대를 이상을 구매하기를 원한다"며 "구매를 위한 예비 승인 요청을 루마니아 정부에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는 "지난 해 폴란드 시장에서 우리 방산기업들의 역대급 무기 수주로 방산업계가 고무됐지만, 기존 글로벌 시장의 방산 강자들과 경쟁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라며 "한국 무기에 대한 견제도 심해지고 있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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