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업인 가운데 이분 처럼 논쟁적인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창업 20년 만에 세계 부자 순위 200위 안에 들을 만큼,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는데. 한편으론 말이 너무 앞선다, 실적을 부풀렸다, 심지어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누군지 아시겠나요. 셀트리온의 창업주 서정진 회장입니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온갖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데, 서정진 회장도 전혀 뒤질 게 없습니다.테슬라와 일론 머스크를 종교처럼 신봉한다고 해서 '테슬람'이란 말이 있죠. 사실 그보다 앞서 셀트리온과 서정진 회장을 따르는 '셀천지'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관심과 기대가 있다는 건데요.
그런 서정진 회장이 2년 만에 경영에 복귀한다고 합니다.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이런 그룹 내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기로 했어요. 은퇴한 지 모르는 분들도 있는데, 서정진 회장은 2021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회사가 여러모로 위기 상황을 맞아요. 실적은 정체됐고, 주가는 바닥이고, 청사진도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이번 주제는 희망을 말하는 서정진 회장의 셀트리온입니다.
셀트리온은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 중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다음가는, 두 번째로 큰 회사에요. 셀트리온 상장 계열사는 세 곳(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을 합하면 시가총액이 35조원가량 하는데요. 현대차와 비슷합니다.
이렇게 큰 회사가 설립된 지는 20여년밖에 안 됐습니다. 서정진 회장이 2000년 세웠죠. 창업 이전까진 잘 나가는 대기업 임원이었는데, 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동료 6명과 시작한 게 셀트리온입니다. 바이오 사업을 택한 것은, 이 분야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신문에서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기사를 우연히 봤기 때문인데요. 세계 시장 규모가 1000조원이 넘는데 그럼 경제력으로 10등 하는 한국은 100조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당시 100조원은 고사하고, 1조원 매출 올리는 제약사도 없었죠. 그럼 내가 한번 해보자 하고 나섭니다.
이 대목에서 코스닥 1등 기업 에코프로를 세운 이동채 회장의 창업 스토리가 생각나는데요. 이동채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잡지 읽다가 서정진 회장과 비슷한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훗날 유튜브 보다가 창업해서 대성한 분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쨌든 셀트리온은 창업 2년 만에 성과를 내요. 미국 제약사 백스젠이란 곳으로부터 에이즈 백신 생산 계약을 따냅니다. 백스젠이 백신을 개발하면, 이걸 셀트리온이 인천 송도에서 생산한다는 것이었어요. 근데 이 계획은 어긋나요. 송도 공장을 거의 다 지은 시점에 백스젠의 에이즈 백신이 임상 실패를 합니다. 임상 다 승인받고 계약한 게 아니라, 임상 승인을 전제로 계약을 한 게 문제였죠.
사실 그러니까 셀트리온에 생산을 맡기긴 했을 겁니다. 딴 데서 하기 힘드니까. 어쨌든, 백 스젠도 타격이었지만, 신생 기업인 셀트리온은 어땠겠어요. 투자받아서 공장 지었는데, 투자한 사람들이 난리가 납니다. 돈 다시 토해내라 하고, 사기꾼이라며 서정진 회장을 압박해요. 서정진 회장은 이때 너무 힘들어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다가, 차마 실행은 못 했다고 하죠.
어떻게 해서든 버티고 버텨서 공장을 2005년에 간신히 다 지어요. 그리고 3개월 만에 글로벌 제약사 BMS란 곳에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위탁생산, CMO 계약을 따냅니다. 간신히 살았죠. 이걸로 한동안 먹고 살아요.
그러다가 남의 약 만들어 주는 것 하지 말고, 내가 직접 개발해서 해보자. 그래서 시작한 게 지금의 사업인 바이오 시밀러 사업입니다. 바이오 시밀러 말이 좀 어려운데. 바이오 의약품의 한 종류에요. 일반적인 합성 의약품과는 다르죠.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 같은 게 합성 의약품인데. 이건 공장에서 그냥 찍어냅니다. 반면에 바이오 의약품은 대장균, 효모, 동물세포 같은 살아있는 세포주가 있어야 만들 수 있어요. 얘네한테 필요한 DNA를 넣어주면 단백질을 합성하거든요. 이 단백질만 모아서 약으로 만들어 낸 게 바이오 의약품이에요. 단백질 의약품이라고도 합니다.
기존 합성 의약품보다 당연히 생산 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균일하게 만들어 내기도 어려워요. 생명체가 만든 거니까요. 근데 이건 또 장점이기도 한데. 그만큼 비싸게 가격을 받을 수 있어요. 또 바이오 의약품을 주로 쓰는 질환이 류머티즘 관절염, 당뇨, 암 이런 난치성이라 환자가 꾸준히 계속 사야 합니다. 비싸게 팔 수 있고, 한 번 팔면 오래 팔 수 있고. 환자 입장에선 최악인데 회사 입장에선 사업하기 좋죠.
셀트리온은 이런 바이오 의약품 중에서 특허가 끝난 것을 비슷하게 만들어요. 똑같이는 못 만드는 게 세포주가 살아있기 때문인데요. 어쨌든 효능은 비슷하고, 안전하다면 오케이. 그래서 바이오 시밀러라고 부르는 건데요. 오리지널약과 효능은 비슷한데 조금 싸게 시장에 내놓는 게 셀트리온의 전략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놓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램시마가 첫 바이오 시밀러였어요. 2013년이었는데. 사실 세계 최초 바이오 시밀러였어요. 유럽과 미국에서 대박을 터트립니다. 연간 매출이 1조원에 이르러요. 또 항암제와 자가면역 치료제로 쓰이는 트룩시마, 유방암과 위암 치료제인 허쥬마도 수 천억원씩 벌어 줍니다.
주식투자 하는 분 중에 종종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교하는데. 사업 성격이 다릅니다. 바이오 의약품 사업이란 점은 같은데.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시밀러 보다는 다른 제약사들이 개발한 약을 대신 만들어만 주는 위탁생산, CMO를 주력으로 해요. 자회사 바이오에피스가 바이오 시밀러 사업을 하고 있어서 얘네 것도 만들어 주긴 하는데요, 비중은 작죠. 반도체로 치면 남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 주기만 하는 파운드리 기업 tsmc와 비슷한 것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합니다.
셀트리온은 CMO는 거의 하지 않고, 자기가 개발한 바이오 시밀러만 생산합니다. 남들 것도 만들어 줄 수는 있는데, 남들이 자기 기술 다 보여줘 가면서 경쟁사인 셀트리온에 맡기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반도체와 비슷하죠. 삼성전자가 반도체 아무리 잘 만들어도 애플 같은 회사가 주문 잘 안 하잖아요. 삼성전자가 애플 반도체 설계를 참조해서 더 멋진 휴대폰, 컴퓨터 만들 염려가 있으니까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인데 tsmc 사업 모델을 따르고, 셀트리온은 삼성전자 모델을 따르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재미있는 포인트 같아요.
그런데, 요즘 셀트리온은 위기 상황에 몰렸어요. 사실 실적만 보면 위기 까지는 않은데. 매출이 작년 기준 20%쯤 늘어서 2조2000억원가량 했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조금 줄어서 6400억원가량. 이익률은 28%.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죠. 근데, 셀트리온 같은 성장 기업은 매출이 30~40%씩 늘고. 이익률도 40~50%는 돼야 '이 정도면 괜찮네' 이럽니다. 성장 기업이니까요.
주가가 이걸 정확히 반영하는데요. 2020년 한때 37만원 했던 게, 지금은 15만원 안팎까지 확 밀렸어요.
사실 서정진 회장 본인이 자초한 것도 있는데요. 2019년에 2030 비전이란 것을 내놨는데. 2030년까지 매출 30조원 하겠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 넘겠다. 이런 희망을 제시했습니다. 7년밖에 안 남은 시점에 매출 2조원 하고 있으니까. 주주들, 투자자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이 세 개 상장사를 합병해라. 이런 요구가 나옵니다.
이건 좀 오래된 논란이긴 한데요. 셀트리온이 약을 개발해서 생산하면, 셀트리온헬스케어가 가져가서 팔거든요. 이것 때문에 10여년 간 분식회계 논란에 시달립니다. 헬스케어가 약을 사간 뒤에 창고에 잔뜩 쌓아 놓고 팔지도 못하고 가지고만 있어도 셀트리온이 돈 많이 버는 것처럼 장부상에는 보이거든요. 셀트리온이 그냥 팔면 되는데, 이걸 헬스케어 한 번 더 거치니까. 굳이 판매 수수료도 떼줘야 해요. 또 매출도 부풀려지겠죠. 한 약을 갖고 두 회사에서 매출을 잡으니까. 셀트리온이 1000원에 약을 넘기면, 헬스케어가 이걸 1500원에 팔아요. 그럼 두 회사의 매출은 총 2500원인데. 사실 매출은 1500원 맞죠. 어차피 한 약이고, 같은 회사니까.
과거에 서정진 회장이 셀트리온 지분 따로, 헬스케어 지분 따로 가지고 있어서 논란이 더 컸습니다. 헬스케어를 통해서 오너가 일종의 통행세를 받은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이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서정진 회장은 셀트리온홀딩스를 세워서 지주사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지배하게 했습니다. 이러면 연결 실적으로 다 잡히니까 분식회계 논란은 종식됩니다. 금융 당국도 작년에 130억원 과징금 처분으로 이 문제를 종결했어요.
그런데도 합치라는 게 주주들 요구입니다. 또 이왕 합치는 것 셀트리온의 자회사 셀트리온제약까지 다 합치자. 한국 투자자들은 쪼개기 상장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약 잘 팔리면 셀트리온이 좋은 건지, 헬스케어가 좋은 건지 조금 헷갈리죠. 다 붙여서 하나의 회사로 평가받아라. 이게 요즘 추세이기도 합니다.
근데, 이건 기술적으로 하든 안 하든 선택하면 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약을 잘 파는 것이겠죠. 지금 잘 팔리는 램시마를 더 팔거나, 램시마 버금가는 약이 있어야 성장을 하죠. 사실 이거 하려고 서정진 회장이 복귀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에서 매출 1위 의약품, 뭔지 아시나요. 코로나 때문에 화이자, 모더나의 백신이 잠깐 1등 하긴 했는데. 원래는 미국 제약사 애브비가 개발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입니다. 류머티즘, 궤양성 대장염, 건성 등의 치료에 쓰여요. 이 약은 연간 매출이 25조원이나 하죠. 근데, 미국 특허가 올해 풀렸습니다. 미국에서만 매출이 21조원이나 됩니다. 5%만 가져와도 1조원이죠. 이 때문에 현재 글로벌 제약 업계가 난리가 났습니다. 미국의 화이자, 암젠, 오가논,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 이스라엘 테바 등등 쟁쟁한 기업들이 바이오 시밀러를 내놓기로 했어요.
셀트리온도 빠질 수 없죠. 이름이 '유플라이마' 입니다. 유플라이마 하나만 잘 뚫어도 매출이 조 단위가 될 겁니다. 과거 램시마 팔기 위해서 서정진 회장이 유럽의 안 가본 병원 없는데, 다시 나설 채비를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직접 판매망을 갖추고 직판하겠다고 합니다. 다른 제약사 통하면 수수료 20~30% 줘야 하는데, 이거도 아깝다는 거죠.
또 램시마도 미국에서 팔아야 해요. 기존에 정맥 주사 형태로 맞아야 했던 램시마를 허벅지 같은데 푹 찔러서 환자 스스로 맞게 한 램시마SC를 미국에서 판매할 예정인데요. 오리지널약인 레미케이드에도 없는 형태여서 아예 신약으로 팔기로 했습니다. 이미 유럽에선 램시마SC가 한 해 2000억원 넘게 팔리고 있어서 상품성은 입증이 됐습니다. 미국 의사들이 처방만 해준다면, 이것도 대박이 날 수 있어요. 이 밖에도 셀트리온은 올해 5개 제품에 대한 허가 신청할 예정이에요. 제품당 시장 규모가 크게는 18조원에 달해서 한두 개만 터져도 매출이 팍팍 늘겠죠.
셀트리온은 매출의 20%가 넘는 4000억원 가까이 매년 연구개발 비용을 쓰는데요. 이 정도로 연구·개발에 진심인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미래를 위해 정말 큰돈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서정진 회장과 셀트리온은 늘 '미래'와 '희망'을 얘기했죠. 이 희망 때문에 사람들은 욕을 하기도 하고, 사기꾼으로 매도하기도 했지만, 그 희망 덕분에 셀트리온이 여기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실은 셀트리온이 지금까지 판 것은 약이 아니라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값을 지불하는 환자들에게는 오리지널약보다 훨씬 싸게 제공했고, 투자금을 댄 주주들에게는 주가 상승으로 보답을 했던 것 같아요. 서정진 회장이 복귀해서 또 어떤 희망을 말할지 눈여겨보시죠.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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