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을 손질하기로 하면서 근로제 개편안 수정이 기정사실화 됐다. 16일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은 주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주 최대 근로시간 하향 조정을 암시했다.
하지만 주 최대 근로시간을 낮추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정부의 느슨한 인식이 또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 경우 지금 시행되고 있는 근로기준법 상 '탄력근로제'만도 못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 51조의 2에 따라 3개월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주 64시간씩 최대 6주까지 일할 수 있다. 탄력근로제는 최장 6개월 단위로 허용된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주의 법정 근로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근로시간을 줄여서 최대 64시간(법정근로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도 이 제도에서 따왔다.
60시간 이하의 캡을 씌우는 수준의 근로시간 개편안이라면, 차라리 도입 절차(노사 서면합의)가 까다로워 활용률이 10%도 안되는 탄력근로제의 문턱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판국이다. 주52시간 제도를 도입한 문재인 정부 때 탄력근로제가 확대됐기 때문에 개정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주60시간' 기준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도 논란이다. MZ 노조 협의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유준환 의장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주52시간 초과 근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있다고 해도 이는 예외적인 상황인데, 일반적으로 접근될 수 있는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우려가 크다”며 현행 주52시간 제도도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결국 대통령실 지시대로 60시간 아래로 캡을 씌워도 같은 논란이 반복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주52시간'을 넘기면 '장시간 근로'라는 '숫자 프레임'에 갇혀 있는 판국에, 캡을 씌우는 것만으로는 논란을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공짜 야근 단속', '근로시간 개편 시 노사 합의 절차 도입' 등 근로자의 건강권·선택권 보장을 담보하는 개편안의 취지 보다 근로시간 유연화부터 강조한 탓에, 개편 제도가 현장서 악용되리란 인식을 갖게 만든 게 패착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정부는 그간 '1주 최대 69시간이 허용된다'는 보도에 대해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은 극단적 상황을 가정해 제도 취지와 사실 왜곡"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박해 왔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선지, 지난 6일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에서는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할 경우 주 69시간까지 △보장하지 않을 경우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상 '주69시간 근로'가 일상화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개편안에서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해제'를 허용하는 것을 '선택권'으로 포장한 것도 악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물론 MZ세대마저 '11시간 연속 휴식'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경영계가 부린 '과욕'을 정부가 수렴하는 과정에서 여론이 돌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언론 등에 "고용부로부터 근로시간에 대해 제대로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일관된 전략의 부재를 상징한다는 지적이 있다.
임금 근로소득에 의지하는 2000만명에게 적용되는 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근로시간 개편안 재검토 지시 이후 우왕좌왕 하는 모습도 이런 정황이 배경에 있어 보인다.
여당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일본 강제징용 노동자 보상이나 노조 회계투명성 의제와 달리,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서는 옳은 방향인지 확신이 없다는 느낌"이라며 이번 '주69시간 참사'가 치밀한 전략의 부재 탓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018년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주52시간제 도입에 일조했던 김성태 국민의힘 중앙위 의장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근로시간 총량을 단축시켰지만, 사업장마다 특수성이 있어서 획일적인 규율로는 경쟁력 유지가 어려웠다"며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만큼 최근 진통을 동력삼아 정부가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