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우리의 본질은 아티스트와 팬들의 행복인데 이렇게까지 그들이 괴로운 게 맞냐는 생각에 슬펐고, 밤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방시혁 하이브(전 빅히트 뮤직) 의장은 지난 15일 관훈포럼에 참석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 과정에서 가수들과 팬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사과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성공시키며 'SM-JYP-YG' 진영에 파고든 하이브의 저력은 몇 년 새 K팝 시장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글로벌 무대에서 승승장구한 BTS 덕에 하이브는 코스피 시장에 입성했고, 국내외 레이블 인수 및 IT 분야와의 결합으로 삽시간에 몸집을 불렸다.
물량 공세 속에서 '아이돌 4세대'는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그 중심엔 르세라핌, 뉴진스를 잇달아 성공시킨 하이브가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바통을 받아 4세대 주도권을 쥔 하이브의 기세는 'SM 인수'로까지 이어졌다. '신인' 하이브가 K팝의 역사라 불리는 SM의 경영권을 두고 카카오와 신경전을 벌인지 한 달. 하이브가 SM 경영권을 포기하고, 플랫폼 분야에서 카카오와 협력하기로 하며 상황은 일단락됐다.
가요계는 유례없던 규모의 '쩐의 전쟁'에 과도기를 맞은 듯했다. K팝은 일반적인 산업군과 구분되는 특징적 요소를 다수 갖추고 있다. 크리에이터들의 창작물을 판매하는 감성 영역에 해당하며, 소비가 결과물에 대한 질적 가치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보다는 응원하는 가수에 대한 애정, 즉 팬심을 토대로 한다. 아티스트와 팬들 간 지속적인 연대와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 '팬덤 비즈니스'다.
이는 업계의 숙명이기도 했다. 각종 마케팅 수단을 활용해 음반·음원·굿즈 등의 판매를 극대화하고, 공연에서 나아가 게임·웹툰까지 부가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대놓고 '장사한다'는 이미지를 팬들에게 심어줘서는 안 됐다. 그야말로 '돈' 이야기는 금기시됐다.
하지만 SM 인수전 상황에서는 '돈' 이야기만이 존재했다. 물론 쩐의 논리로 바라봐야 할 사안이었지만 팬들과 업계 종사자들이 속상함을 토로하는 건 그 과정에서 불거진 난타전이다. 하이브는 SM과 카카오의 사업협력계약을 '을사늑약'이라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들과 SM의 관계를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루이뷔통모에헤네시-불가리에 비유, 종속적으로 정의했다.
소속 가수들의 사기를 꺾는 위험한 시도였다. 일각에서는 SM 가수들이 대거 올해와 내년 중 재계약을 앞둔 바, 하이브가 회사를 인수할 경우 동행을 이어갈지 미지수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었다.
실로 SM 아티스트들은 적잖이 속앓이한 것으로 보인다. SM 개국공신으로 2014년 비등기 이사로 선임된 보아는 데뷔 20주년 콘서트 현장에서 "일본에서는 아무 말이나 잘하는데 한국에서는 잘 못 한다. 아무래도 이사라서 그렇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여전히 SM 소속 가수들이 SNS에 올리는 글, 내뱉는 말 한마디에 각종 추측이 더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K팝 기획사들은 서로 깎아내리는 식의 경쟁을 해온 적이 없었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아티스트들을 동요하게 하고, 팬들의 결집력을 약하게 만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했다"고 SM 사태를 지켜본 소회를 전했다.
방 의장은 "보아 씨가 20주년 콘서트를 했다. 축하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사람들이 인수를 전쟁으로 바라보며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아티스트들은 자기 자리에서 가슴앓이하며 업에 충실했고, 팬들도 그 자리에서 응원했다. 우리나 카카오나 아티스트와 팬의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시작한 거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그들을 배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가수와 팬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시장이다. 모든 회사가 주야장천 중요성을 설파하는 IP(지식재산권)도 결국엔 가수를 기반으로 하고, 팬들의 '맹목적 소비 행태'가 없이는 영향력을 잃는다. 돈 이야기를 빼니 비로소 산업을 지탱하는 이들이 보였다는 모순.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번 사태는 국내 K팝 산업에 분명한 깨달음을 안겼다.
남겨준 숙제도 확실하다. 이 역시 '돈' 이야기를 빼고 접근하면 나아가야 할 길이 보다 명쾌해진다. 하이브는 방 의장이 BTS의 부재가 K팝의 성장 둔화를 가져왔다고 진단했으니 '포스트 BTS' 발굴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4세대 선두에 선 만큼, 성장 곡선을 그리는 팀들을 BTS 급의 '슈퍼 IP'로 끌어올리는 게 절실하다.
카카오가 새겨야 할 키워드는 '책임'이다. 이담엔터(아이유), 스타쉽(아이브·몬스타엑스), IST엔터(에이핑크·더보이즈), 하이업(스테이씨) 등의 레이블을 보유 중인 카카오엔터는 SM까지 더해 국내외 팬덤을 더욱 키울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음반·음원 유통을 비롯해 플랫폼 운영, 티켓 유통까지 K팝 사업을 폭넓게 전개하고 있는데, 이제 SM-하이브와 이룬 3각 합종연횡 축의 역할까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차례 '역 바이럴' 의혹이 일며 질타를 받았던 만큼 보다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K컬처 산업의 긍정적 발전을 이룰 필요가 있다.
가장 기대되는 건 '이수만 없는' SM이다. SM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케케묵은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굳은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반성했다. 이성수 SM 대표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공범이 아니었냐는 비판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SM의 미래를 그렸다. 하이브의 공세 속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제시한 'SM 3.0'은 1인 프로듀싱 체제에서 벗어나 환부작신(換腐作新)할 것을 약속했다.
끝으로 이들 모두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건 가수들이 마음껏 춤추며 노래하고, 팬들이 아낌없이 응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는 경영진들의 역할이자 곧 K팝의 생명력이다. K팝 산업에서는 다양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메이저 엔터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거대 전략 못지 않게 산업의 본질에 집중하며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한 발전적 담론을 함께 끌어내야 할 때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