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하나를 더한 사람이 있다.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맡으며 감상하라’는 노인호 조향사(사진)다. 그는 고흐가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해 그린 ‘아몬드 블라섬’에 순수하고 우아한 ‘가드니아’ 향을 더하고, 클림트가 사랑하는 연인을 그린 ‘키스’에는 관능적인 ‘일랑일랑’ 꽃 향을 입힌다. 노 조향사가 그림에 향기를 접목한 것은 2013년부터다.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작품 해설을 하다가 ‘예술작품에 향기를 더하면 차별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며 “처음 만났을 때 향기가 좋으면 그 상대방에게 더 호감이 가듯, 작품에 향을 입혀 관람객에게 더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작품은 모네의 ‘수련’이었다. 잔잔하면서도 맑은 수련 향을 종이에 뿌려 맡게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노 조향사는 “대작 앞에서 여러 사람이 종이를 들고 냄새를 맡으며 작품을 감상하니, 외국인들도 ‘이게 뭐냐’며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명화와 향수를 결합한 브랜드 ‘향기의 미술관’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가 만든 향기를 맡으면 왜 이 작품과 어울리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품 속 인물이나 작가의 이야기가 향수 안에 담겼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농부들의 고단하고 투박한 삶을 그린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는 흙냄새가 나는 ‘베티버’와 ‘파촐리’를 주재료로 썼다. 땅과 가장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의 향을 구현했다.
그는 “향기는 어디까지나 작품을 뒷받침하는 조연”이라고 거듭 말했다. 때론 ‘명품 조연’도 주연 못지않은 사랑을 받는 법. 요즘엔 미술평론가나 큐레이터 못지않게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껏 진행한 개인 강연만 700회가 넘는다. 정우철 도슨트, 민시후 피아니스트와 함께 시작한 ‘감각주의’ 공연은 2년 만에 관객 5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냄새를 맡다 보면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제가 만든 향기를 통해 명화에서 느꼈던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했으면 해요. 그게 바로 제가 오늘도 향을 만드는 이유죠.”
이선아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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