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수지 여사.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2004년 제5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당시 가택연금 상태라 방한하지 못했다. 이후 9년 만인 2013년 한국을 방문해 상을 받았다. 하지만 훗날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박해에 개입한 책임을 물어 2018년 5·18기념재단에서 광주인권상을 철회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한 그는 본인 이름을 ‘수치’가 아니라 실제 발음과 비슷한 ‘수지’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에선 외래어 표기 규범에 따라 ‘수치’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언론에서도 그의 요구를 반영한 곳이 있는가 하면 무시하고 기존대로 쓰기도 하는 등 들쭉날쭉했다. 그후 다시 10년이 흐른 요즘, 한국 언론에서 ‘아웅산수지’ 여사를 올바로 표기하는 곳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한국 관점에서 편하게 또는 그저 타성적으로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얀마 인명 체계와 우리말 표기 및 호칭의 문제점을 알아보기 위해 10년 전 일을 복기해보자. 당시 그는 왜 ‘수치’ 대신 ‘수지’라고 써달라고 했을까? 미얀마에선 성(姓)이 따로 없어서 성과 이름(名)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서 ‘아웅산 수지’라고 띄어 쓰는 것은 타당한 것일까? 더구나 ‘수지’를 성처럼 써서 ‘수지 여사는~’ 식으로 호칭하는 것은 근거가 있는 방식인가? 궁금증을 요약하면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부산외국어대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미얀마어과가 있는 곳이다. 그곳 김성원 교수는 “미얀마어에서 그의 발음은 ‘쑤찌’에 가깝다”며 “국어의 외래어 표기에 경음을 안 쓰는 점을 감안하면 ‘수지’ 정도가 적당하다. ‘수치’는 발음이 확연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아웅산수지는 본래 ‘아웅 산 수 지’로 구성된 이름이다. 미얀마는 따로 성이 없다. 부모나 조상 이름에서 따와 자기 이름을 쓴다. ‘아웅산’은 아버지 이름(이 역시 ‘아웅’과 ‘산’이 합쳐진 것)이고, ‘수’는 할머니 이름, ‘지’는 어머니 이름에서 따왔다. 따라서 ‘김 씨, 이 씨’ 하듯 성을 따서 부르는 한국식 호칭이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에서처럼 이름 일부를 떼어내 ‘수지 여사’라 하는 것은 근거 없는 호칭”이라며 “다소 길더라도 ‘아웅산수지 여사’라고 전체 이름을 다 부르고 붙여 쓰는 게 예의에 맞고 어법에 맞는다”고 설명했다.
아웅산수지 여사의 부친이자 미얀마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에서 ‘보족 아웅산’으로 부른다. ‘보족(Bogyoke)’은 경칭으로 ‘장군’이란 뜻이다. 이를 한국에서는 보기요크, 보조케, 보조크 식으로도 부르는데 모두 틀린 표기다. 실제 발음은 ‘보촉’에 가깝고, 한글로는 ‘보족’ 정도로 옮기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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