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의 충격이 국제 유가도 흔들었다. 국제 유가는 15개월 만에 최저가를 기록해 유가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자는 단기간에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상승 동력이 부족해 유가는 당분간 오르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돼 이들의 시름은 더 깊어질 전망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번 주(13~16일) 들어 'KODEX WTI원유선물(H)'는 9.42% 떨어졌다. ETF 상품 중에 낙폭이 다섯번째로 컸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는 이 상품을 193억원어치 순매수했지만 하향세를 보이면서 손실은 더 커지게 됐다.
KODEX WTI원유선물(H) ETF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으로 산출되는 기초지수(S&P GSCI Crude Oil Index Excess Return)의 추종한다. 다시 말해 유가가 오르면 수익률도 오르는 구조지만, 유가가 급락하다보니 해당 ETF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선물은 배럴당 3.72달러(5.2%) 떨어진 67.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21년 12월3일 이후 최저가로 1년 3개월여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을 내줬다. 16일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70달러선을 밑돌았다. 런던 ICE선물거래의 5월물 브랜트유도 이번주 들어 10%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유가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큰 이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KODEX WTI원유선물인버스(H), TIGER 원유선물인버스(H)는 각각 9.88%, 9.39% 올라 ETF 시장 수익률 상위권에 위치했다. 인버스 상품은 유가가 하락할 경우 이익을 얻는다.
최근 금융 위기가 불거진 가운데 실물 경제가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유가를 끌어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유가가 당분간 바닥에 머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주요 은행들의 시스템 리스크가 부각돼 유가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며 "대규모 추가 감산이 없으면 유가가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줄이더라도 보여주기식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가에선 앞으로 유가 흐름이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를 받는 것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리오프닝 기대감은 선반영됐다는 판단에서다. 심수빈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초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감이 원유 가격을 방어했다"며 "리오프닝이 유가를 끌어올리려면 기대감이 아닌 실물 지표로 리오프닝 효과가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유 수요가 확실하게 회복돼야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며 "미국 중앙은행(Fed)이 하반기엔 긴축을 완화할 것으로 예상돼 유가는 상저하고(상반기엔 부진, 하반기엔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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