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은행 11곳이 16일(현지시간) 위기설에 휩싸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300억달러(약 39조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파산 이후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우려가 커지는 지역 중소은행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에 이어 대형은행까지 발 빠르게 나서자 불안 심리가 크게 잦아들었고 중소은행 주가도 반등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으로부터 70조원가량의 자금 지원을 받는다는 소식에 크레디트스위스(CS)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자 다시 미국 중소은행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주식은 장 초반 36%가량 폭락했다. 그러나 대형은행들의 지원 소식이 나오면서 급반등해 전날보다 9.98% 상승한 34.2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또 다른 지역은행 웨스턴얼라이언스뱅코프도 이날 14.1% 오른 36.91달러에 마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JP모간체이스, 웰스파고 등 4개 은행은 이날 각각 50억달러를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예치한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각각 25억달러를 넣기로 했다. BNY멜론, PNC뱅크, 스테이트스트리트, 트루이스트, US뱅크가 각각 10억달러를 지원한다. 은행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은행과 중소은행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며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미국 경제와 우리 모두를 위해 이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최고경영자(CEO·사진)의 역할이 컸다. 워싱턴포스트(WP)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과 다이먼 CEO는 전화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민간 자본을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다이먼 CEO는 직접 다른 은행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오전 2시30분 기준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달 FOMC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확률은 84.1%로 집계됐다. 동결은 15.9%, 0.5%포인트 인상은 ‘제로(0)’였다.
은행 부도 우려가 어느 정도 잦아들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동결이 아닌, 베이비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6일 기준금리를 연 3.0%에서 연 3.5%로 0.5%포인트 인상했다. 위기설 때문에 당초 관측보다 인상폭을 줄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가 인상 여지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한편 옐런 장관은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인들은 자신의 예금을 필요할 때 인출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금 보호 보험의 한도를 넘어서도 보호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시스템적 위험과 심각한 경제적 후과를 초래할 경우”로 한정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SVB의 모기업 SVB파이낸셜도 17일 결국 뉴욕 남부연방지법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회사 측은 법원에 제출한 신청서에 각각 100억달러에 달하는 파산과 부채를 기재했다. Fed 시스템의 일부인 SVB 자체는 파산을 신청할 자격이 없지만, 모기업은 남은 재산을 보호하고 채권자에게 상환하기 위해 파산 관련 신청을 낼 수 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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