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싸웠던 소설 속 인물들로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 그렸어요"

입력 2023-03-19 18:15   수정 2023-03-27 10:08

폴란드 공상과학(SF)의 거장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소설 ‘솔라리스’(1961),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모비딕’(1851), 고대 그리스 영웅담을 다룬 서사시 ‘오디세이아’(기원전 약 700년).

출간 시기도, 국가도 다른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바다와 치열한 사투를 벌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다룬 대작들이다.

한국계 미국 작가 바이런 김(62·사진)은 이들 작품 속 등장인물의 시선을 캔버스에 담아냈다. 부산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마린 레이어’에서 ‘B.Q.O.’라는 제목의 회화 연작 11점을 선보였다. 세 편의 소설 속 인물들(버튼·퀴케그·오디세우스)의 이름에서 첫 번째 알파벳 글자를 딴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하나의 큰 캔버스에 그린 그림 같지만 사실 세 개의 캔버스로 이뤄져 있다. 맨 위는 작가가 바다에서 바라본 하늘을, 가운데는 물의 표면을, 맨 밑은 물속에 잠수해서 본 모습이다.

바이런 김은 원래 하늘을 그리던 작가다. 매주 일요일 그날의 하늘을 그린 뒤 자신의 감상을 몇 줄 적어 넣는 ‘선데이 페인팅’ 연작을 2001년부터 꾸준히 그려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인 동시에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들과 함께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적인 경험을 통해 전체의 관계성을 얘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가 바다와 가까워진 건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다. 2020년 초 미국에서 봉쇄조치가 내려지자 그는 고향인 샌디에이고에서 머무르기 시작했다. 격리 생활의 답답함을 풀기 위해 그가 택한 건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샌디에이고의 라호이아 해변에서 홀로 물살을 가르며 바다수영을 하던 경험은 그가 인간과 물의 관계를 고찰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 그는 소설 속 인물들처럼 거친 파도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그래서 초창기 B.Q.O. 연작은 바다에 대적하는 인간의 신화를 주로 다뤘다. 하지만 바다수영을 하면서 시선이 바뀌었다. “바다에 뛰어들어 물속에 몸을 맡기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 모두 바다라는 광활한 자연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솔라리스에서 바다가 죽으면 인간도 모두 죽고, 모비딕에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 고래를 죽이다가 자멸하는 것처럼요.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계기로 다가갔으면 해요.” 전시는 4월 23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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