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은행(bank)에 달려가지(run) 않아도 예금을 인출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SVB 뱅크런을 두고 ‘스마트폰 뱅크런’ 혹은 ‘뱅크탭(tap·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다)’이라고도 한다.
뱅크런은 은행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실제 은행 파산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자기실현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예금자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돈을 꺼내고 나머지는 은행에 넣어둔 채 이자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은행이 부실 징후를 보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둘러 예금을 인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머뭇거리다가는 돈을 못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뱅크런이 일어나고 은행은 파산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예금을 지키려는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집단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낳는 구성의 오류다.
뱅크런의 또 한 가지 무서운 점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A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A은행에 국한되지 않는다. B은행 예금자도 불안감을 느끼고 예금 인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멀쩡한 은행도 위기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미국 워싱턴 뮤추얼, 와코비아, 영국 노던록은행 등에서 뱅크런이 있었다.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에선 2015년 6월 하루 10억~15억유로씩 예금이 인출됐다.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 초 사흘 만에 종합금융회사 예금 1조1000억원이 빠져나갔다. 당시 종금사 개인 예금의 38% 규모였다. 이후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종금사라는 업태 자체가 사라졌다. 2011년 2월엔 부실 저축은행이 무더기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전국 저축은행에서 하루 수천억원의 예금이 인출됐다.
예금보험제도의 단점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금 지급을 보증해 주면 예금자들은 은행의 부실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돈을 맡길 가능성이 있다. 은행 역시 자금을 신중하게 운용할 동기가 약해진다.
최종 대부자 기능이란 지급준비금이 바닥난 은행에 중앙은행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최종 대부자 기능 역시 ‘망하면 구제해 준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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