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작가 "中企 수출맨 장그래 그리려…가나도 다녀왔죠"

입력 2023-03-20 18:16   수정 2023-03-27 10:13


“중소기업은 회사 자체가 미생(未生)에 가깝습니다. 바로 다음달 생존할 수 있느냐를 놓고 고군분투하는 곳이죠. 매달 월급을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만화 ‘미생’의 열다섯 번째 책을 4년 만에 출간한 윤태호 작가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생 시즌1이 대기업이란 조직 안에서 개인의 생존을 그렸다면 시즌2는 중소기업을 무대로 회사의 생존을 다룬다”며 “시즌1보다 무대는 작아졌지만 개념은 더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생은 바둑 용어다. 삶과 죽음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의 돌을 말한다. 완전히 죽은 돌인 사석(死石)과 달리 완생(完生)할 여지가 남아 있다.

그는 현재 카카오페이지에 미생 시즌2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에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은 15권이다. 시즌1은 1~9권이다. 시즌2로 따지면 여섯 번째 책이다. 시즌2는 대기업이던 원인터내셔널에서 정규직 사원이 되지 못한 장그래가 오상식 과장 등이 세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이야기다.

2013년 시즌1을 끝낸 그는 2014년 드라마 미생이 방영된 다음해인 2015년 시즌2 연재에 나섰다. 하지만 2018년 돌연 연재가 중단됐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다 팔꿈치 인대를 다친 탓이었다. 2021년 연재를 재개해 내년 여름 완결을 앞두고 있다. 미생은 단행본으로 지금까지 250만 부 넘게 팔렸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어려움도 있다. 윤 작가는 “회사 인테리어도 너무 세련돼졌고, 상사가 호통치는 것도 거의 사라졌다”며 “시즌2에 만화적 과정을 넣어 한 임원이 서류를 공중에 날리는 모습을 그렸더니 ‘요즘 이런 회사가 어디 있냐’, ‘이런 것 보고 따라 하는 임원이 있을까 봐 겁난다’는 댓글이 달려 놀랐다”고 말했다.

꼼꼼한 취재로 유명한 그는 이번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는 “100개의 중소기업이 있다면 100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있다 보니 직접 중소기업을 찾아다니며 취재하지는 못했다”며 “대신 한국무역보험공사와 KOTRA,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주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요르단과 가나에도 갔다 왔다. 장그래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출장 간 곳이다. 만화 속 장그래는 원래 중고차 유통에 뛰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레드오션인 것을 알고 중고차 부품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는 윤 작가의 취재에 기반한 이야기다. “알아보니 이미 너무 많은 해외 바이어가 한국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뒤가 열리는 큰 배를 임차해 몇 개월 동안 세워놓고 꽉 채우면 떠나는 식이에요. 이야기가 안 되겠다 싶어서 자동차 부품으로 바꿨죠.”

요르단은 미생 시즌1에도 등장한다. 윤 작가 아버지가 옛날에 그곳에서 해외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어릴 적 기억 때문에 미생에 등장시켰는데 알고 보니 요르단이 중고차를 비롯한 중동 모든 무역의 허브였다”며 “아랍 문화권이지만 기독교 인구도 3% 있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영어가 굉장히 잘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나는 아프리카에서 새롭게 중고차 거래 중심지로 뜨는 곳이다. 중고차 연식 제한이 없어 국내 중고차 업체도 많이 진출했다. 그는 “KOTRA에서 가나가 뜨고 있다는 얘기를 해줘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그래가 일하는 회사는 6~7명 규모다. 중소기업이라기보다 영세기업에 가깝다. 하지만 이것도 무역하는 기업치고는 큰 편이라는 설명이다. 윤 작가는 “대부분 마진율이 1~1.5%에 불과해 이분들이 1억원을 남기려면 몇백억원 단위의 거래를 해야 한다”며 “인원도 대부분 2~3명”이라고 말했다. 해외 바이어를 만나러 다니는 사장 한 명, 사장이 출장 중일 때 국내 영업을 책임지는 사람 한 명, 경리 한 명 등이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이 주인공 장그래에게 한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완생할 수 있을까. 윤 작가는 “대기업에서 살아남는다고 완생은 아니다”고 했다. 임원이 되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임원이 돼도 언젠가는 퇴직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그렇다고 창업이 답이라고 하기엔 회사의 생존이 사람의 생존이 되기 때문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윤 작가는 “대한민국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기업과 그 종사자들이 희화화 또는 비하되고 밈으로 소비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그 이미지를 개선하고 중소기업 종사자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미생 시즌2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라고 말했다.

임근호/안시욱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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