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상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민들의 결연한 저항 의지로 전쟁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동부의 교통 요지인 바흐무트 사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돈바스 지역 승패를 가를 결정적 싸움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선전 뒤에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의 강력한 지원이 자리잡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민주 대 독재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지난달 전쟁 1주년을 맞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행한 연설에서 “푸틴은 우리의 지속적인 지원과 NATO의 단결을 믿지 않지만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은 영원히 자유를 지킬 것”임을 역설했다. 푸틴은 “모든 책임은 서방에 있으며 러시아를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쟁 계속 의지를 강조했다. 미국은 50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지원을 통해 푸틴의 패권 야망을 허용치 않겠다는 뜻을 재천명했다.
서방이 제공한 3대 병기가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 전쟁 초반 우크라이나 반격을 주도했다. 다연장 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 전차를 정밀 타격하는 바이락타 드론이 전쟁의 게임체인저다. 미국의 에이브럼스 탱크와 독일의 레오파드2 탱크가 실전에 배치되면 전쟁 수행 능력이 한 단계 레벨업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전은 푸틴의 전쟁이다. 푸틴의 유라시아주의 세계관과 정치적 셈법이 침공을 견인했다. 러시아의 공세적 대외정책은 소련 붕괴, 상처받은 국가의 자존심, 소련 제국 말기의 혼란과 무질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신념을 반영한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가져올 안보에 대한 실존적 위협,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구분해 생각할 수 없다는 편집증도 한몫했다. 푸틴의 ‘스트롱맨’ 신드롬으로 자국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고 서방의 힘을 경시한 것이 결정적 패착이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졸속 철수를 지켜보고 바이든의 외교·군사 역량을 한수 아래로 본 것이 판단을 그르쳤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은 푸틴의 오판으로 우크라이나는 시체 안치소가, 러시아는 왕따 국가가 됐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의 풍부한 에너지원을 장악하려는 푸틴의 의도가 벽에 부딪혔다. 동부는 노르웨이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천연가스 산지다. 크림반도, 루한스크, 도네츠크 지역에도 셰일가스가 풍부하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를 피해 중국과 경제 협력을 확대하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 사이에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신(新) 삼국전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번 전쟁으로 핀란드와 스웨덴이 군사적 중립을 벗어나 NATO 가입을 추진키로 했다. NATO를 약화시키는 대신 단합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에 유화적이었던 독일의 친미 성향을 강화시켰다. 중·러 관계도 과거의 마르크스·레닌 이념의 공유에서 가스와 오일에 바탕을 둔 실리 관계로 재정립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한 몸이라는 역사성도 허상임이 드러났다. 친(親)러시아 세력이 힘을 잃고 우크라이나 분리주의를 승인해준 꼴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향권에 있다는 푸틴의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우크라이나전은 21세기 가장 추악한 전쟁이 됐다. 살인, 고문, 아동 납치 등 반인륜적 범죄의 현장이 됐다. 우크라이나가 ‘피에 젖은 땅’으로 전락했다. 전쟁 개시는 쉽지만 종결은 어렵다. 전쟁의 승패에 집권의 정통성이 걸린 푸틴이 물러서기는 지난한 과제다. 전쟁을 피해 50만~100만 명이 러시아를 떠났다. 물가는 폭등하고 반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망자, 이민자 급증으로 매년 100만 명씩 인구가 격감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결국 종전을 위한 외교적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21세기 신냉전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미국과 러시아의 정치력이 힘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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