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보안업체 A사는 B사에 지분 전량(600만주)을 970억원에 매각했다. 거래가는 주당 1만6167원으로 회계법인을 통해 금액을 산정했다. 그러나 3년 뒤인 2018년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거래액이 시세보다 낮다는 이유였다.
관할 국세청은 장외거래 시세(3만2000원)로 거래액을 산정한 뒤 법인세 등 세금 353억원을 고지했다. 납득이 안 갔던 A사는 같은해 12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다. 하지만 2년 뒤 기각됐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끝에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353억 중 319억원에 대해 부과 처분 최소 결정을 받았다.
21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사진)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조세불복 행정소송에서 국세청 패소율은 12.0%로 전년 대비 0.9%포인트 높아졌다.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 100건 중 12건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의미로 2014년(13.4%)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조세불복 소송 건수는 1608건으로 2020년(1395건)부터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과세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세금 2조4009억원 대해 조세불복 소송이 제기됐다. 이중 23.9%인 5427억원이 법원에서 잘못 부과된 세금으로 인정됐다.
이러한 과세 오류로 국세청이 납세자에게 돌려준 세금은 1조1214원으로 집계됐다. 행정소송(법원) 패소로 결정된 환급액 5747억원에다 조세심판원의 심판 결과에 따른 환급액 5467억원을 더한 액수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인정된 불복 환급금은 7조7658억원에 달한다.
세금이 부당하게 부과됐다고 생각하는 납세자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만 국세의 경우 조세심판원에서 사건이 기각돼야 행정소송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조세심판원의 심판 결과를 더하면 조세불복 규모는 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2021년 심판청구의 인용(패소)률은 43.2%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인사 조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조세불복 사건에서 귀책이 인정된 국세청 직원은 415명이다. 이중 징계 대상자는 0명이다. 인사경고 8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경고·주의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잦은 세법 개정도 문제로 꼽힌다. 한 해에만 세법을 여러 번 고치다 보니 과세당국도 법이 모호할 때 일단 세금을 부과하고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발표한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와 세법의 해석방법론’ 논문에서 “조세가 조세정의 등 정책수단으로 기능하면서 세법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조세전문 변호사는 “100억원 이상의 고액 사건은 쟁점을 떠나 (재판에서) 이기기 쉽다는 인식이 있다”며 “세금이 과도하다 보니 재판부가 구제 차원에서 납세자 손을 들어주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송이 잦다 보니 국세청이 쓰는 법률 비용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이 조세불복 소송과 관련해 쓴 법률비용은 42억1200만원으로 전년(26억6700만원) 대비 1.6배 늘었다. 2018년부터 5년 간 쓴 비용을 다 합치면 170억55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변호사 선임료를 비롯해 납세자(원고)에게 배상한 소송비 등이 보함된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한양여대 세무회계과 교수)은 "국세청 외부 기관의 조세심판 기능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며 "과세당국 내부에서도 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과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고액이나 신종거래 과세는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치고 있고, 법해석 다툼이 치열해 최종 판결이 필요한 사건이 대부분"이라며 "과세품질평가 하위직원에 대해 성과금 감액 등으로 책임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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