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22일 14:1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외화채를 통한 기업 자금 조달에 비상등이 켜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의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 상각 등으로 금융시스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채권 시장의 투자심리가 식은 여파다. 국내 기업들의 외화채 조달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호주 달러 커버드 본드의 발행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커버드본드란 기업이 중장기 자금 조달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채권 등 보유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을 뜻한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주금공의 커버드본드에 ‘AAA’ 신용등급을 매겼다. 주금공이 호주 달러 표시 채권인 ‘캥거루본드’를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금공은 최대 5억 호주 달러 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HSBC·UBS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외화채 발행을 준비했다. 지난주 수요예측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지만 연이은 금융시장 충격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심이 빠르게 위축되면서 발행 작업을 멈춘 상태다. 향후 시장이 풀리면 발행 일정을 재개할 계획이지만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자금 조달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외화채 시장은 올해 초 기관투자가가 지갑을 푸는 ‘연초효과’로 우호적인 수급 기조를 보였다. 수출입은행(35억 달러), 포스코(20억 달러), SK하이닉스(25억 달러) 등이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하지만 글로벌 은행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등 금융시스템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외화채 시장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사태로 채권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도 악영향을 줬다. CS가 발행한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를 상각 처리한 데 따른 후폭풍으로 ‘본드런(연쇄 채권 매도)’ 우려가 커진 여파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글로벌 은행 위기에서 시작된 불안감이 채권시장으로 번지면서 변동성이 가파르게 커졌다”며 “이 추세라면 외화채 조달을 준비 중인 기업들이 발행 시점을 조율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 악화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신용등급 하향 기조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은 채권을 발행할 때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 S&P는 지난달 SK하이닉스의 등급 전망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내린 데 이어 지난 20일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렸다.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일부 우량 신용도를 가진 기업을 제외하면 A급 이하 비우량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투심 약화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한국광해광업공단 등이 외화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다만 미 중앙은행(Fed)의 긴축 강도에 따라 투자 수요가 좌우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Fed는 21~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되면서 이번 FOMC에서는 금리 동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대형 은행의 코코본드 상각 이벤트가 발생한 만큼 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가 당분간 크게 저하될 것”이라며 “글로벌 채권에 대한 투자 의견을 하향으로 변경한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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